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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Jan 21. 2024

경청

마음으로 듣기

경청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들음"입니다.


얼마 전 신입사원 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석했습니다. 대인관계를 묻는 항목에 "당신이 생각하는 대인관계의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던져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응시자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라고 답을 하더군요. 그만큼 경청의 중요성을 누구나 강조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준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듣는다'가 아니라 '들어준다'라는 표현에도 왠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느낌이 드네요.


오늘은 "나를 어루만진 코칭 순간들"에게 썼던 글 한 편을 올려볼까 합니다.

경청에는 주의 깊게 들는 것을 넘어서 판단하는 마음, 즉 에고를 버리고 들어야 한다는 적극적 경청의 의미를 썼습니다.



어렸을 적 가끔 줄자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쭉 빼냈다가 작은 버튼을 꾹 누르면 뱀처럼 공중에서 휘리릭 회전하고 통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게 신기해서 몇 번을 쭉쭉 잡아당기고 버튼을 누르고 하면서 장난을 치곤 했죠.


내 안에는 작은 줄자가 있습니다. 작지만 잡아당기면 요술처럼 늘어나는 신기한 줄자입니다. 코칭이라는 걸 배우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가끔은 그 줄자가 내 머릿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코칭과 줄자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화할 때 얼마나 집중하며 들을까요?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남편이 운전합니다. 옆에는 아내가, 뒷좌석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겠죠. 아내가 불현듯 어제 만난 친구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어제, 고교 동창 경숙이를 만났어. 당신 경숙이 기억나지?"

"응, 기억하지. 왜?" 남편이 운전하며 대답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어제 친구와 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고교 시절에 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 자신은 어떤 여고생이었는지 등 오랜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털어놓습니다. 둘이 차장 밖을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게 얼마 만인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시작합니다.


운전하면서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다가 횡단보도 빨간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하던 중 어떤 사람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로고와 비슷한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걸 보게 되고, 이어서 어제 회사에서 상사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옆에서 아내는 계속 말합니다. 남편은 듣는다는 표시로 "응. 응"하며 코대답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새 아내의 말은 배경 뒤로 사라지고, 상사와의 대화가 배경의 메인이 되어 무대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잘 마쳐야 나도 상사에게 인정받고 다음 인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텐데.'

'어제 내가 제안한 내용을 클라이언트는 검토하고 있을까?'

내 생각이 주연배우가 되고, 아내의 말은 무대 뒤 배경이 되어 젖혀진 커튼처럼 마음의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거기까진 아내의 말을 완벽하게 들어주는 완전범죄(?)였죠. 그런데, 여기서 아내가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이럴 때 어떻게 할 것 같아? 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남편은 "어?"하고 당황합니다.

무대 위에서 상사와 열심히 프로젝트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데, 아까 젖혀진 커튼이 생각의 시야를 확 가려 버립니다.

"어. 뭐였지?"


이런 일은 흔히 벌어지는 일 아닐까요? 보통 이런 걸 건성으로 듣는다고 하지요. 다시 남편은 미안한 마음으로 회사의 일을 잊고 아내의 말에 집중합니다. 아내의 말이 이어집니다. 학창 시절엔 아내가 더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했는데 어제 본 경숙이는 학창 시절의 그녀가 아니라고 합니다. 친구의 남편은 유능한 사업가인가 봅니다. 아내는 친구를 보고 부러웠던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넋두리합니다.

남편은 어느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내의 친구 남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집니다. 급기야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저의가 뭘까 하면서 은근히 부아도 치밉니다. 그리고 별것 아닌 포인트에서 투박한 답변이 나오고 급기야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대화는 급 마무리됩니다.


코칭에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핵심 요소입니다. 특히 맥락적 경청을 하라고 합니다. 고객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는 것까지 들어야 한다네요. 아니, 위의 예시에 든 남편처럼 상대가 말한 것도 듣지 못하는 판에 말하지 않는 것까지 들으라니요?

맥락적 경청은 고도의 몰입이 필요합니다. 저도 제법 잘 들어주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대꾸를 안 하고 듣는 것만으로, 온전히 듣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건성으로 듣거나, 집중이 안될 때가 많지요. 평상시에도 대화할 때, 내 안에서 견주어 생각하는 순간을 알아차렸습니다.


'견주다'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사물을 질(質)이나 양(量) 따위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입니다. '나는 그와 실력을 견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런 예문으로 쓰입니다. 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서로 대어 보는 것.

저의 듣기 또한 견주어 듣기로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아까 운전하던 남편의 이야기처럼 자신을 타인과 견주어 생각하고 들으니 내 마음속에 줄자가 나타나 계속 길이와 양을 견주어 재보는 것이죠. 집중해서 듣는다 해도 견주어 듣는 것은 나의 감정을 수시로 흩트려 놓습니다.

그건 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쑥불쑥 에고가 작동하기 때문일 겁니다. 상대와 나, 대화의 내용과 나의 상황을 견주어 생각한다면,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온전하게 내 마음속에 담을 수가 있을까요? '나는 저런 면에서는 좀 나은 것 같은데, 저런 면은 너무 부럽다. 나와 너무 차이 나서 박탈감이 생긴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할 텐데' 등.


순수하게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나와 비교 및 대조, 판단하면서 듣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몸을 기울이고 시선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내어주며 들어주는 자세를 키워야 합니다.

오늘부터 누군가 내게 와서 말을 걸면 하던 일을 멈춰보세요. 보던 화면에서 눈을 떼고, 쓰고 있던 펜을 ‘탁’ 내려놓고,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도 한쪽으로 살짝 밀어 놓는 거죠. 그리고 몸을 상대에게 향해 돌려 앉고요. 이는 "난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의 인사 "I see you."의 의미가 "당신의 영혼, 당신의 마음속 중심을 본다"는 의미인 것처럼, 진정한 경청은 견주어 생각하지 않고, 내 안의 눈금자를 버리고,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당신을 보고 있으니 이야기하세요."라는 태도입니다.


견주는 것은 상대와 경주할 때만 써야 합니다.

  <'나를 어루만진 코칭 순간들'  '견주어 생각하기'편>


경청의 나만의 의미는 "귀로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며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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