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특강 / 문장의 기술] 크리티카의 인문학 에세이 中
글쓰기의 기초 체력은 문학 작품으로 기르기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독자가 얻는 효용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중 으뜸을 꼽으라면 난 단연코 ‘문장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글쓰기의 기초 체력을 제대로 길러주는 것은 사회과학·자연과학도 아니고 심지어 인문학도 아닌, 문학 그 자체라고 본다. 특히 어릴 때일수록 글쓰기 연습은 기본적으로 문학 작품들을 모범으로 삼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문학을 제외한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은 엄밀히 말해 중학생 즈음의 나이대로 성장한 뒤, 그때부터 깊게 배워도 절대 늦지 않다. 인문‧사회‧자연과학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틀에 박히지 않은 단어를 생성해내고, 문구나 구절들을 다방면으로 조합하여 문장을 구성해내는 ‘힘’만큼은 문학 작품 속 표현들이 여타 학문들 속 그것들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문학만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문학과 여타 학문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문학은 비록 그 명칭에 학(學)이라는 개념어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본디 ‘표현의 예술’이다. 표현을 고심해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 속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이 문학인 셈이다. 반면 인문‧사회‧자연과학은 이름에 學을 붙인 본래 취지에 걸맞게 본질적으로 ‘탐구 행위’다. 학자가 궁구해낸 세상 속 진리를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개념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얼핏 들으면 문학이든 인문‧사회‧자연과학이든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엄연히 차이가 있다. 문학이든 인문‧사회‧자연과학이든 모두 「표현과 진리의 상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동일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표현과 진리」 각 요소 간의 선후관계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본다. 문학적 글쓰기는 -조금 황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표현을 하면서 자신 나름의 진리, 즉 세계관을 피력하는 과정이다. 표현이 先(먼저)이고, 진리는 後(나중)의 문제인 것이다. 반대로 인문·사회·자연과학은 진리의 발견이 우선이고 표현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그 표현에도 제약이 있다. 모호한 표현은 금물이며 길고 복잡한 문장 구성도 경계대상이다.(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인문·사회·자연과학의 글도 글쓰기 연습에 도움 되는 바가 분명히 많다. 그러나 문학이 글쓰기 연습에 도움 되는 바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이번 Chapter는 일단 문학의 효용을 다루려 한다. 여타 학문의 효용은 후에 따로 상술할 예정이다.)
문학이 ‘표현의 예술’이란 명제의 뜻
기호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로도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는 문학을 두고 “이론화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또한 국내에도 팬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는 소설을 쓸 때 서사를 미리 구상하지 않는다. 글을 쓰고 표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완성되게 놔둘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과 다른 말을 한 작가들도 있을 테다. 그러나 적어도 소위 문학계의 대가(大家)라 불리는 이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문학을 -탐구 행위가 아닌- ‘표현의 예술’로 인정하는 것은 과언이 아닌 듯 보인다. 바로 이 점이 글쓰기의 기초 체력을 기르게 해주는 교재 및 선생으로서 문학 작품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흔히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문학 작품 속에는 그 작품 이전에 그 누구도 형상화하지 못했던 세상 속 사물과 관념들에 대해 작가가 고뇌를 거듭해 빚어낸 신선한 표현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신선한 표현들은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아 끝내 신성함도 갖춘 것들이다. 그 문장 문장들에는 작가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부러 홀로 헤쳐나간 추진력이 깃들어 있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외로이 포착해낸 투시력이 스며있으며, 누구도 표현하지 않은 방식으로 타자에게 말을 거는 기발한 화법까지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꾸준히 모방하고 체화하며 글쓰기를 연습할 때, 우리는 작가가 겪었던 의지 및 사고력과 명문장이 갖는 위대한 기술 및 전달력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쓰기 연습의 전범(典範)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문학 작품을 본보기 삼기로 마음을 다졌다면, 가급적 한국 문학을 보는 것이 옳다. 외국 문학은 어찌되었든 번역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때 한국어 고유의 쓰임새도 크든 적든 변형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일탈과 파격이 창의적·창발적인 표현력을 키워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일 테다. 한국어의 고급스런 쓰임새를 정석대로 배우려면 원어민의 고급 표현을 배우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기상으로 해방 이후 현대에 출간된 한국 문학을 읽는 편이 좋다. 윤동주를 위시한 근대 시절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문학가들이야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분들의 언어는 21세기 지금의 언어와는 이젠 차이가 많아졌다. 그래서 최소 해방 이후의 작품들을 권하는 바다. 우리는 현대 국어와 관련한 글쓰기를 연습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베스트셀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다만 오랜 기간 꾸준히 활동한 작가의 작품들을 보길 바란다. 혹은 -비록 한두권에 불과할지라도- 오랜 기간 꾸준히 회자되는 작가의 작품을 보길 바란다. 그저 시류에 편승하거나 우연 덕분에 한두 해 잠깐 유명세를 치룬 사람들의 몇 권 되지도 않는 작품들은 -굳이 보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잠깐은 시간 속에 묵혀둬도 괜찮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시간의 파괴력” 속에서도 그 작가와 작품이 살아남고, (다행히도 생존해있다면) 그가 계속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여 추가적인 결실들을 선보일 경우, 그 때 비로소 그자의 문학적 궤적을 글쓰기 연습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면 된다. 글은 유행 아이템이 아니다. 세월을 견뎌 낸 작가와 그의 글에는 뭐가 됐든 소비품처럼 처리되어 기억조차 나질 않는(혹은 않을) ‘가짜 글쟁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비범함이 있다. 마치 숙성된 명품을 즐길 때 본인의 자질도 원숙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만의 모범·전범 만들기
지금부터 본인이 모범·전범으로 추구하고픈 작가와 작품을 물색해보자. 그리고 그를 통해 훗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하든, 어떤 형식으로 글을 갖춰야 하든지 간에 결코 지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자기만의 글쓰기 체력을 키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