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특강 / 문장의 기술] 잘못된 문장 고치기 연습 中
[ 오늘의 잘못된 문장 ]
“ … 이와 관련하여 정책 담당자의 재고가 요구되어진다. 국가가 진정한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현재 국민들의 낮아져 있는 의욕과 창의성을 올려야하는 것이지, 이미 의욕이 충만하고 창의성적인 인재들마저 평범해지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
‘우리는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종종 ‘피동(被動)’ 표현을 쓴다. 피동(被動)이란 말은 한자어 뜻 그대로, <특정 주체가 그의 의지가 아닌 타의‧타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피동 표현은 어떤 행동으로 인해 「당한」자를 부각하고 싶을 때 주로 쓴다. 반면 주동 표현 또는 능동 표현은 주로 어떤 행동을 「행한」자를 강조하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한다.(‘주동’과 ‘능동’을 엄밀히 구별하지 않아도 된다. 국립국어원 역시 이 둘을 같은 개념으로 본다. 주동 표현이든 능동 표현이든 둘 다 <주체가 자발적으로 뭔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사동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주동이란 말을 쓸 때, 그리고 피동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능동이란 말을 쓸 때만 주동과 능동을 구분할 뿐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 인들이 파리 시민들을 인질로 잡았다.”는 문장은 전형적인 주동 및 능동 표현이다. 이 문장은 파리 시민들에게 인질극을 「행한 자」, 즉 이슬람 인들이 주어라는 것을 부각한다. 반면 “파리 시민들이 이슬람 인들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문장은 전형적인 피동 표현이다. 이 문장은 인질극을 「당한 자」, 즉 파리 시민들이 피해의 주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듯 우리말은 능동으로도, 피동으로도 쓸 수 있다. 피동이 서양식 혹은 외국어식 표현이므로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칙상 옳은 얘기는 아니다. 위 예문에서도 봤듯이 말하거나 (글 쓰는) 사람이 어떤 주체를 부각․강조하고 싶은지에 따라 능동이든 피동이든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피동이라고 무조건 우리말 체계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피동 표현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피동 표현을 썼을 때가 문제일 따름이다. 여기서 《더 나은 방법》이란, 의미를 더 잘 드러내는 표현이라든가, 발음상 더 자연스러운 표현 등을 말한다.
피동 표현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피동형’ 표현이고, 둘째는 ‘피동사’를 활용한 표현이다.
‘피동형’은 (타)동사 어간에 <-아/어지다>를 덧붙여서 만든다. “잘 깎아진 밤톨처럼 …”, “자동으로 켜진 스위치” 등이 그 예들이다. ‘깎아진’과 ‘켜진’이 바로 피동형이다. ‘깎아진’은 <깎다>라는 (타)동사 어간에 <-아지다>를 덧붙여서 만든 것이고, ‘켜진’은 <켜다>라는 (타)동사 어간에 <-어지다>를 덧붙여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국어 표준어법상 ‘피동형’을 하나의 낱말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한편, ‘피동사’는 동사 어간에 <이/히/리/기>를 덧붙여서 만든다. ‘쓰이다/곱씹히다/들리다/얹히다’ 등이 그 예들이다. 순서대로 말하면, <쓰다/곱씹다/듣다/얹다>라는 동사들의 어간에 <이/히/리/기>를 덧붙여서 만든 것이다. 피동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낱말이고 표준어다.
그렇다면 위 예문은 괜찮은 피동 표현들일까. 아니면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피동으로 표현한 ‘나쁜 예’일까. 개인적으로 후자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위 예문은 <더 낫게> 고칠 방법들이 있다. 아래는 위 예문을 고쳐본 것이다. 특히 ①, ②, ④로 표시된 밑줄 부분들은 본래 예문에서 피동으로 표현된 곳들이다. 그것들을 《더 나은》 피동 표현, 혹은 사동 표현들로 고쳐봤다. 참고로 ③으로 표시된 밑줄 부분은 피동 표현과 관련이 없지만, 보다 문어체다운 단어들로 바꾼 것이다.
“ … 이와 관련하여 정책 담당자의 ①재고를 요구한다/재고가 요구된다. 국가가 진정한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현재 국민들의 ②낮은/낮아진 의욕과 창의성을 ③고취해야하는 것이지, 이미 의욕이 충만하고 창의적인 인재들마저 ④평준화하는/평범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
① 부분 : 원문 “요구되어진다”는 이중 피동이다. 이미 ‘요구된다’라는 피동 표현에, <-어지다>라는 피동 표현을 한 번 더 붙인 것이다. 따라서 굳이 피동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요구된다”라고 한번만 쓰는 게 의미상 옳다. 발음도 이게 더 편하다. 하지만 발음상 《더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능동으로 바꾸는 것이다. ‘“재고가 요구된다”에서 ’재고‘를 주어가 아닌 목적어로 바꾸면, “재고를 요구한다”라는 능동 표현이 된다. 이 능동 표현이 의미도 훨씬 더 명료하고 발음도 수월하다. 듣는 이가 느끼기에도 “재고가 요구된다”보다 “재고를 요구한다”가 훨씬 그 뜻이 명확하고 서술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능동 표현과 피동 표현이 둘 다 가능할 때, 필자의 의도를 더욱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발음하기도 편한 표현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② 부분 : 원문 “낮아져 있는”은 ‘낮아져’라는 피동 표현에다, ‘있는’이라는 상태 표현이 덧붙여진 것이다. 즉 피동인 상태를 말하려는 문장이다. 그러나 뜻이야 알겠지만 왠지 어색하다.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있다. ‘낮아져’와 ‘있는’을 합쳐 한단어로 말하면 된다. 바로 “낮아진”이 그것이다. “낮아진”은 “낮아져+있는”처럼 피동이면서 동시에 상태도 드러낼 수 있다. 둘은 의미가 서로 똑같지만, 표현이 덜 어색한 쪽은 전자(前者)다. 능동 표현도 가능할까. 가능하다. “낮은”으로 고치면 “의욕과 창의성”을 능동적인 상태로 표현한 셈이다. 사실 “낮은”이 “낮아진”보다 의미상 포괄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국민들의) 의욕과 창의성”은 타의‧타력에 의해 저해될 수도 있지만, (국민들) 자의에 의해 저하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낮아진”이라 표현하면 이 중 전자만 뜻할 수 있는 반면, “낮은”으로 표현하면 전자로 인한 결과 및 상태도 뜻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후자(後者)의 의미도 포괄할 수 있다. 짧으면서도 의미를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게 《효율적인 방법》이다.
③ 부분 : 원문 “올려야 하는 것”을 보다 문어체답게 바꿔봤다. ‘고취(鼓吹)하다’는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고 불어넣다>라는 뜻이다. 항상 한자어가 한글 고유어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위 예문에서는 ‘올리다’라는 구어체식 표현보다 ‘고취하다’라는 말이 《더 나은 방법》이다. “의욕과 창의성”이란 목적어는 ‘올리다’란 동사에도 어울리긴 하지만, ‘고취하다’라는 동사가 해당 목적어의 성격을 더 잘 부각한다. ‘올리다’는 단순히 낮은 상태에 있는 뭔가를 상승시키는 뜻만 강조하는데 반해, ‘고취하다’는 뭔가를 상승시킨다는 뜻과 더불어 목적격 주어를 <격려하고 고무>한다는 뜻까지 포함한다. 이미 전술(前述)한 바처럼 발음상 길이가 비슷하면서도 의미를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그게 《더 효율적》이다. 한글 고유어는 물론이고 한자어도 가급적 많이 알아두는 게 글 실력과 말하기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제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한글은 한자 문화권 내에서 탄생한 언어다. 고유어로만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게 현실인데도 한자어를 쓰지 말자는 사람들을 왕왕 보고 있자면 다소 안타까울 뿐이다. 근본 없고 대안 없는 非難에 불과하다. 이 문제와 관련한 내용들은 다음 기회에 상세히 논의하겠다.
④ 부분 : 원문 “평범해지게 만드는”에서 “평범해지게”는 ‘평범하다’는 형용사를 피동으로 표현한 것이다.(한편 “평범해지게 만드는”이란 문구 자체는 사동문이다. 사동(使動)은 한자어의 뜻대로, <특정 주체가 어떤 대상에게 뭔가를 하게끔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우리말은 형용사도 피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이를 피동이 아닌 起動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피동이라기 보단 상태의 변화라고 주장하는 학자나 책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준별하지 않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앞서도 여러 번 느꼈듯이 ‘-아/어지다’ 식의 표현은 발음상 질감이 좋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이 문구도 마찬가지다. ‘평범해지게 만드는’이란 사동 문구가 뭘 말하려는지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발음상 어색한 면이 있다. 이럴 땐 피동이 들어간 사동 문구 말고, 주동‧능동적인 사동 문구를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그 문구가 뜻도 명료하면서 자연스럽게 ‘읽힌’다면 그게 원문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평범해지게 만드는’을 능동형으로 표현하면 ‘평범하게 만드는’이 된다. 욕심을 좀 더 부려서 문어체로, 그리고 보다 한자어를 활용한다면 ‘평준화(平準化)하는’이란 표현도 가능하다. 정리하면 「‘평범해지게 만드는’ < ‘평범하게 만드는’ 또는 ‘평준화하는’」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후자일수록 더욱 의미가 명확하고 서술도 자연스럽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피동 표현과 능동 표현 중 뜻과 발음상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를 추구하는 것이 글재주나 입담을 늘리는 길이다.
물론 피동 표현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이성을 잃은 듯 눈깔이 뒤집혔다>에서 “뒤집혔다”는 피동 표현 중 피동사다. 피동사지만 뜻도 분명하고 읽는 맛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이성을 잃은 듯 눈깔을 뒤집었다> 식의 능동 표현이 더 이상하다. ‘이성을 잃’었다는 얘기와, 주체의 의지를 드러내는 능동 표현이 상치되기 때문이다. 또 예를 들어 <감춰진 진실>처럼 피동 표현 중에서 피동사도 아닌, ‘피동형’이어야만 그 어감(뉘앙스)이 적절할 때도 있다. 이 예문을 피동사 <감추인 진실>이라고 쓰면 이상하다.(‘감추인’은 표준어가 아니기도 하다.) 또 <(누군가가) 감춘 진실>이란 표현도 썩 훌륭하지 않다. 이처럼 주동‧능동과 피동 중 무엇이 《더 나은. 더 효율적인 방법》인지는 속된 말로 ‘Case by Case’, ‘건(件) by 건(件)’이다. 왕도는 하나뿐이다. 그저 여러 예문들을 읽고, 쓰고, 말하면서 스스로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달 및 공유는 자유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