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특강 / 문장의 기술] 잘못된 문장 고치기 연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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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잘못된 문장 ]
“ … 보수 진영은 안정 지향적이고 진보는 모험적이라, ①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이견으로 다투기 일쑤다. 그러나 그저 반대편이라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을 힐난하는 ②-1정치 현실과 그에 편승하는 일부 무뢰배 시민들이 ②-2넘쳐난다. … ”
③“조사 결과 합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감행된 집회가 20건 이상, 집단 시위는 10건 가량, 1인 시위는 5건이나 되었다.” … ”
한국말에는 주어를 생략해도 무방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글을 잘 쓰고 싶어! 어떻게 하면 좋지?”란 문장에서 주어는 없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가 무엇인지 안다. 보나마나 ‘나’가 주어다. 생략됐을 뿐이다. 그래도 소통이 된다. 종종 주어가 은둔, 즉 숨어버리는 게 한국말의 특징이다.
반면 한국말에는 주어가 둘 이상 등장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글 실력이 일취월장한 그녀와 그는 이제 제법 의기양양해졌다.”란 문장에서 주어는 ‘그녀’와 ‘그’, 둘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술어를 하나로 공유한다. 반면 주어가 둘 이상이면서 각 주어마다 서술어가 달라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조금 바꿔서, “글 실력이 일취월장한 그녀는 의기양양해진 반면, 그렇지 못한 그는 늘 의기소침하다.”란 문장을 보면 주어는 ‘그녀’와 ‘그’ 둘이다. 하지만 각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는 서로 다르다. 이렇듯 주어가 종종 둘 이상이어서 그들을 명시해야만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 그것도 역시 한국말의 특징이다.
주어가 한 개인지 두 개 이상인지 그 개수는 해당 주어를 생략할지 여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주어를 생략할지 말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해당 주어를 생략하더라도 뜻을 전달하는 데 지장이 없는지> 여부다. 주어를 없애도 문장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는다면 주어는 없어도 괜찮다.
위 예문은 2개이고, 총 3문장이다. 공교롭게도 각 문장들 모두 ‘주어’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 왜 문제인지 핵심 쟁점만 일단 정리해본다. 먼저 첫 번째 예문에서 첫째 문장은 <있어야 할 주어가 사라져서> 문제고, 둘째 문장은 <성격이 서로 다른 주어가 서술어를 하나로 공유해서> 문제다. 반면 두 번째 예문, 즉 셋째 문장은 앞의 수식을 받는 <주어가 이중 삼중으로 존재>해서 문제다. 쉽게 정리하자면 주어가 제 멋대로, 숨거나 야합하거나 노출돼서 문제가 된 상황들이다. 우선 위 문장을 전체적으로 고치면 아래와 같다. 일단 수정된 전체 글을 보기 전에, 스스로도 한번 생각해보자. 위 예문의 각 문장 속에서 어느 부분이 어떻게 ‘주어’를 잘못 사용한 문장들인지 말이다.
“ … 보수 진영은 안정 지향적이고 진보는 모험적이라, ①그 두 진영은(또는 그 두 세력은)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이견으로 다투기 일쑤다. 그러나 그저 반대편이라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을 힐난하는 ②-1정치 현실이 만연하고, 그에 편승하는 일부 ②-2무뢰배 시민들도 넘쳐난다(대다수다). … ”
③“조사 결과 합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감행된 (국민의) 정치참여로서, 집회가 20건 이상, 집단 시위는 10건 가량, 그리고 사실상 집단 시위로 판결된 1인 시위는 5건이나 되었다.”
① 부분 : 본래 예문의 문장을 보면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이견으로 다투기 일쑤다」라는 문구의 주어가 없다. 앞에서 “보수 진영”과 “진보”라는 주어를 이미 사용했기 때문인지, 무의식적으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서 주어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어를 생략해버리면 뜻이 모호해진다. 「이견으로 다투」는 주체가 누구(혹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앞의 문구를 통해 추측할 수야 있다. 아마 “보수 진영”과 “진보” 둘 모두를 아우르는 말, ‘그들’을 주어로 염두에 두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렇게 적시하지 않았다면 결국 형식 논리상 흠결이 있는 표현이다.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하는 게 쉽다보니 이처럼 주어를 빠트리지 않아야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놓치는 경우가 꽤 흔하다.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그들’ 혹은 ‘그 두 진영’(아니면 ‘그 두 세력’)이라고 분명히 주어를 써넣어야 한다. 전자(前者)는 주어를 대명사로 간단히 처리한 경우고, 후자(後者)는 주어를 보다 구체적이고 새롭게 재(再)표현한 경우이다. 둘 중 어떤 방식을 택할지는 자유다.
② 부분 : 본래 예문의 문장, <그러나 그저 반대편이라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을 힐난하는 정치 현실과 그에 편승하는 일부 무뢰배 시민들이 넘쳐난다>에서 주어는 “정치 현실”과 “무뢰배 시민들” 둘이다. 대신 서술어는 “넘쳐난다” 하나다. “정치 현실”과 “무뢰배 시민들”이란 두 개의 주어가 “넘쳐난다”라는 하나의 서술어를 같이 쓰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두 개 이상의 주어들이 서로 같은 서술어를 사용할 수는 있다. 단, 그 주어들이 모두 해당 서술어랑 조응해야 한다. 만약 주어들 중에 하나라도 해당 서술어와 조응하지 않는다면, 그 주어에 맞는 다른 서술어가 추가되어야 한다. 일단 “무뢰배 시민들”은 서술어 “넘쳐난다”와 잘 조응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딱히 문제가 아니다.(다만 “넘쳐난다”가 문어체로서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대다수다” 등으로 바꿔 표현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정치 현실”이란 주어는 “넘쳐난다”와 잘 호응되질 않는다. <넘쳐난다>는 “돈이 넘쳐 난다”처럼 다소 형이하학적으로 인지 가능한 대상물의 숫자가 많아질 때거나, “흥이 넘친다”처럼 기운이나 기분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발산할 때는 사용할 수 있지만, “… 힐난하는 정치 현실”처럼 추상적‧관념적인 현상이 부정적으로 확산된 상태를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 힐난하는 정치 현실”이란 말에 더욱 잘 어울리는 서술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고쳐봤다. <만연(蔓延)하다>로. <만연하다>라는 말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 “전염병이 만연했다”처럼 부정적이면서 동시에 추상‧관념적인 현상이 도저에 퍼져있을 때 딱 쓰기 좋은 말이다.
③ 부분 : 여기서 주어는 3개다. “집회”, “집단 시위”, “1인 시위”가 그것이다. 그리고 원래 예문은 이 세 개의 주어를 1개의 관형절(“합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감행된”)로 꾸며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본래 문장 그대로라면 이러한 수식 의도는 실패다. 당해 관형절이 적용되는 주어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감행된” 것이 “집회”까지인지, “집단 시위”까지인지, 나아가 “1인 시위”까지인지 분명하지 않다.(게다가 당해 관형절을 “1인 시위”까지 적용하려는 의도였다면 내용 자체도 틀린 게 된다. 현행법상 ‘1인 시위’는 -진짜 혼자 하는 시위가 맞다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요건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합법적인 절차” 여부를 따지는 건 모순이다.) 형식 논리로만 판단하자면 이 수식은 “집회”까지만 적용된다고 보는 게 맞다. 만약 주어 3개 모두를 다 꾸미고 싶다면 문장을 수정해야 한다. 우선 이 3개의 주어를 통칭할 수 있는 개념어를 만들고, 이 개념어를 관형 구절인 “합법적인 … 감행된” 뒤에다 붙이는 게 맞다.(쉼표까지 붙이는 게 더 옳다. 당해 개념어가 뒤에 열거될 주어들을 한데 묶어준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 “1인 시위”의 특성을 고려해 “1인 시위”라는 주어만 따로 꾸미고 싶다면, 위 예시처럼 그 부분까지 수정해도 무방하다.(형식 논리만이 아니라, 내용 차원까지 완벽성을 기한다면 이 부분 역시 고쳐 쓰는 게 지적으로 양심이 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살펴봤듯이 한국어에서 주어는 변화무쌍하다. 주어가 없어도 괜찮을 때가 있고, 주어가 반드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2개 이상의 주어가 서술어 1개로 일심 단결할 때가 있고, 주어마다 서술어가 달라져야할 때도 있다. 또 여러 개의 주어를 한꺼번에 수식하고 싶을 때 수식을 받는 주어의 범위를 정확히 규명해야할 때가 있다. 주어는 서술어와 함께 문장의 근간이 되는 필수 핵심 성분이다. 이 같이 변화무쌍한 주어를 자신이 의도하는 취지에 맞게 최근 유행하는 시쳇말마따나 ‘낄낄빠빠’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본인의 글쓰기 실력과 문장력도 그만큼 견고해질 것이다. 주어는 낄 때 끼어있고 빠질 땐 빠져있어야 글의 본의와 모양새가 완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