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의미를 과적(過積)하면 <잘못된 장문>이 된다

[글쓰기 특강 / 문장의 기술] 잘못된 문장 고치기 연습 中

by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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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 / 문장의 기술]


한 문장 안에 의미를 과적(過積)하면 <잘못된 장문>이 된다


[크리티카 논술학원 구술면접 아카데미] 인문학 에세이 中 '잘못된 문장 고치기'



[ 오늘의 잘못된 문장 ]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할 휴대 전화도 분실한 가방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주변 사람에게 물어서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야만 했던 당시의 내 처지를 생각해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외국인이 문득 안쓰럽고 딱해 보였다.”



글을 쓰다 보면 문장이 길어지는 때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 긴 문장 자체가 잘못된 문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이 길어도 읽는 사람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을 만큼 형식과 내용상 하자가 없다면 문장의 장단(長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꿔 말해 장문(長文)이면서 동시에 그게 잘못된 문장이 되려면, 문장이 길어진 탓에 읽는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야 한다. 두 세 문장으로 나눠 썼다면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기 편했을 텐데 그들을 한 문장으로 뭉쳐버려서 의미가 과적(過積)된 경우, 그게 바로 ‘잘못된 장문’이다.


인간이 글을 읽을 때 한 번의 호흡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지 자원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글에서 ‘1개의 구절, 또는 1개의 문장’은 글을 읽는 이에게 ‘한 번의 호흡’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구절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길게 나열된다든가, 구절들이 너무 많이 섞여서 문장 자체가 복잡해지고 길어지면, 독자가 처리해야 할 정보량도 늘어난다. 독자의 뇌 속에 정보가 과부하 되면 그 문장은 영 읽기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 되어버린다.


위 예문은 어떤가. ‘한 번의 호흡’으로 읽히는 1개의 문장인가. 아쉽게도 한 번에 읽기엔 구절들이 너무 많고, 문장 자체도 길다. ①여권‧신분증 얘기, ②휴대전화와 가방 얘기, ③외국어가 서툴다는 얘기, ④경찰서를 물어서 찾아가야했던 얘기, ⑤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연계하는 얘기, ⑥외국인에 대한 연민 얘기 등등 한 문장 안에 글쓴이가 집어넣고 싶은 정보가 지나칠 만큼 많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정보는 6가지 가량이나 되는데, 문장은 딱 1개다. 읽는 사람의 뇌가 가열돼 증발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위 예문은 ①~⑥ 중 일부를 이합집산(離合集散)해서 두 문장 또는 세 문장으로 나눠주는 게 옳다. 그래야 독자가 글쓴이의 뜻을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고쳐 쓰기 방식은 다음처럼 대략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제 1안 : ①‧②를 한 문장, ③‧④를 다음 한 문장, ⑤‧⑥을 마지막 문장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문장의 호흡을 짧게 해서 한 문장 안에 담긴 정보량을 최소화시키는 글쓰기 전략이다.


제 2안 : ①‧②와 ③‧④를 한 문장으로 묶고, ⑤‧⑥을 별도의 문장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앞쪽 문장은 호흡을 조금 길게 해서 그 안에 담긴 정보량을 조금 늘리되, 뒷 문장에서 호흡량과 정보량을 줄여 글에 율동을 주는 글쓰기 전략이다.


제 3안 : 우선 ①‧②를 한 문장으로 쓰고, 그 다음에 ③‧④와 ⑤‧⑥을 한 문장으로 묶는 방식이다. 제 2안과 비슷하되, 제 2안의 전후(前後) 순서를 반대로 바꾼 형식이다. 이 역시 글에 박자를 만드는 글쓰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위 각각의 안(案)에 맞춰 글을 수정해보자면 다음과 같다.(조사나 어미 등 사소한 표현법도 포함해 고쳐본다.)


제 1안 :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방도 분실하여 핸드폰 등 연락 수단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오로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야만 했었다. / 당시의 내 처지를 떠올려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외국인이 문득 안쓰럽고 딱해 보였다.”


제 2안 :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방도 분실하여 핸드폰 등 연락 수단도 잃어버린 탓에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오로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 당시의 내 처지를 떠올려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외국인이 문득 안쓰럽고 딱해 보였다.”


제 3안 :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방도 분실하여 핸드폰 등 연락 수단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 오로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야만 했었는데, 당시의 내 처지를 떠올려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외국인이 문득 안쓰럽고 딱해 보였다.”


어떤 식으로든 중간 중간 호흡 길이를 조절하고, 정보의 과부하도 줄인 덕에 본래 예문보다는 한결 읽기가 편해졌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인데 문장의 물리적인 길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긴 문장이라 할지라도, 읽는 사람이 중간 중간 호흡할만한 곳들이 마련돼 있어서 독자가 정보를 인지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면, 그건 잘못된 문장이 아니다. 그를 방증하는 예로서 아래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그가 이끌고 나가는 운동 팀은 모든 반(班) 대항 경기에서 우리 반에 우승을 안겨주었고, ‘돈내기’란 어른들의 작업 방식을 흉내 낸 그의 작업 지휘는 담임선생들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을 부리는 반 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번듯하게 우리 반에 맡겨진 일을 끝내주게 했다.”


소설가 이문열의 대표작이자 1987년 제11회 <이상 문학상> 대상작이기도 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중 일부를 발췌했다.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한 숱한 문장들 중에서 本 글의 취지에 맞게 부러 장문을 하나 골라 봤다.


일단 이 문장은 ‘한 문장’인데도 상당히 길다. 길이만 놓고 보면 앞서 분석했던 [오늘의 잘못된 문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앞서 봤던 예문과 달리 읽기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다. 이유는 내용 측면과 형식 측면, 두 가지 때문이다.


우선 내용측면에서 이문열 작가의 글은 문장 안에 담긴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정보라고 해봤자, ①‘그’가 진두지휘하는 반이 체육대회나 ②여타 과업에서 ③선생님이 진두지휘하는 것보다 능률이 좋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그’의 반(班)에 대한 장악력을 확실히 주제화하고 있는 문장이다. 앞서 봤던 예문은 1개 문장에 정보가 6개나 됐던 반면에, 위 이문열 작가의 글은 1개 문장에 정보가 3개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정보량의 차이다.

둘째, 형식 측면에서 중간 중간 쉼표와 접속사(“그리고”)를 사용했다. 글이 중간에 약간 복잡해지고 길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구간에서 독자에게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을 공간을 마련해준 셈이다. 쉼표 2개와 접속사 1개 정도에 불과한 간단한 장치다. 그러나 사소한 기술처럼 보일지라도, 이러한 몇몇 형식적인 장치를 활용할수록 읽는 사람이 문장 안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데 그 효과를 배가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글을 써왔고 또 많은 사람들의 글을 검토‧지도해본 바에 의하면, ‘잘못된 장문’을 쓰게 되는 근원은 과욕(過慾)조급증(躁急症)이다. 한 문장 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응축‧집약시키고 싶은 ‘과욕’과, 정보들을 조금씩 나눠서 그를 어떻게 조직할지 차분히 생각하지 못하는 ‘여유 부족’ 말이다. 과욕 때문에 문장 안에 정보가 많아지고, 조급증 때문에 문장 속 굽이굽이마다 독자가 숨을 고를 곳이 부족해진다.


사실 한 문장 안에 몇 개의 의미 구역, 즉 정보가 존재해야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정량적으로 수치화해서 말할 수는 없다. 또 쉼표와 접속사가 몇 개여야 옳은지 역시 정량적인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다. 언어는 수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문장 안에 정보량과 형식적 장치를 얼마나 구성해야 <적당>할 것인지는 그때그때 글의 취지와 내용 및 목적에 따라 <적당>히 감(感)을 잡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만 본인이 글을 쓸 때 가급적 독자 입장을 고려해보면서, 자신이 지금 막 쓴 그 문장들을 바로 바로 나지막이 읊조려보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면서 그때그때마다 자신이 쓴 그 특정 구절들이 ‘짧은 호흡’으로 읽기 편안한지, 전체 문장은 ‘긴 호흡’ 차원에서 순조롭게 읽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글쓴이의 뇌가 가용할 수 있는 인지자원의 양은 읽는 이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본인이 쓴 글임에도 본인마저 복잡다단해 보인다면, 독자도 마찬가지일 테다.


쓰고 읽고 쓰고 읽기를 반복하면서, 정보량이 너무 많을 땐 줄이고, 호흡에 휴식처가 필요할 땐 쉼표나 접속사 등을 활용해보자. 문장을 만들 때 과욕은 의미의 과적을 낳는다. 의미가 과적하면 그 문장은 ‘잘못된 긴 문장’이 된다. 흡사 세상살이에도 관조와 사색이 필요하듯, 글을 쓸 때 차분함과 침착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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