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드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에서 느끼는 대리만족감
[리뷰] 일드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에서 느끼는 대리만족감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천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일본의 만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소위 ‘천재’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필자는 그러한 컨셉(concept)의 일본 문화 콘텐츠를 편의상 ‘덴사이케이(天才系, 천재계)’라고 부른다.
이들 주인공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무리를 싫어하고, 권위를 싫어하며, 속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무리에 속한 어느 구성원보다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고, 권위를 지닌 자들보다 위엄 있는 일을 해내며, 그로 인해 세상의 규칙에 속박된 채 수동적으로 사는 인간들을 괜스레 부끄럽게 만든다.
일본 사회가 비교적 집단주의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한 탓에 대중들이 이러한 덴사이케이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빼어난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를 진보하게 한다는 모종의 집단정신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처럼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주인공이 다수에 대항하여 그들을 멋쩍게 만들고 때로는 계몽하는 스토리는 일본 만화나 드라마에서 엄연히, 그리고 매우 빈번하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다.
당돌한 자유주의자
일본의 드라마 <닥터-X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도 결국 이처럼 천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덴사이케이 장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여배우 요네쿠라 료코(米倉 涼子)가 독불장군이자 안하무인인 ‘프리터(freeter)’로서 천재적인 외과의사 다이몬 미치코를 연기한다.
다이몬 미치코의 무기는 독보적인 수술 실력, 그것 하나뿐이다. 대학병원 안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배신과 공작, 협잡과 패싸움 등 온갖 정치놀음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녀는 그들과는 정반대로 오로지 수술 그리고 환자의 쾌유에만 관심이 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신상정보 차트에 늘 취미를 ‘수술’이라고 적는다.)
다이몬 미치코는 철저하리만큼 프리터, 즉 프리랜서라는 자신의 신분에 맞게 행동한다. 그녀의 사고방식과 행동강령에는 상명하복이나 위계서열 따위가 없다. 따라서 그녀는 아래 의사들이 윗사람을 모시고 군대처럼 병원을 휘젓는 회진에 결코 참여하지 않는다. 같은 과 의사들끼리 팀워크를 다진다는 미명 하에 곤드레만드레 잔치를 벌이는 회식에도 일관되게 불참한다.
상급 의사나 동료 의사들이 잔업에 골치아파할 때도 그녀는 계약서에 명시한대로 퇴근시간이 되면 칼처럼 사라진다. 또 자신의 수술 실력에 걸맞게 병원 내에서 최고 직급의 의사들에게나 보장되는 고액의 성과급을 -알바생 주제에-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당돌하게 요구한다.
이처럼 그녀에게 단체행동 따위는 없다. 다이몬 미치코라는 한명의 개인, 그리고 일개 의사만이 있을 뿐이다.
기시감(dejavu) 가득한 ‘꼰대’ 문화
이 드라마의 서사 구조는 무척 단순하다.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다수의 무리와, 세속적인 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탓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인 1명이 매회 대립하는 식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다수가 자유인 1명을 장악하지 못하여 우스갯거리로 전락하는 사건 및 사고들이 반복된다.
일단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영자들과, 병원 안에서 최고 권력자가 되는 데에만 혈안이 된 다수의 속물적인 의사들이 악의 축이다. 그들은 때때로 한패가 되기도 하고, 이견이 생겨 내부적으로 분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매회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등장하는데, 병원의 경영진들과 직급 높은 의사들은 그들의 야심과 체면 때문에 이 중환자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한다. 병원 측에서 수술을 해줘도 별 이득이 없는 환자들이거나, 아니면 병원에서 내로라하는 스타급 의사도 쉽게 손댈 수 없을 만큼 수술하기 난해한 환자들이다.
탐욕에 찌든 병원 관계자들이 우왕좌왕 중환자를 방치할 때 결국 신묘한 수술 기술로 이를 극적으로 살려내는 명의는 항상 다이몬 미치코다.
‘웃프’(웃기고 슬프)게도 ‘무리·권위·속박’에 찌든 경영진과 의사들은 다이몬 미치코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기는커녕, 그녀의 수술 실적을 몰래 가로채거나 구차하게 구걸을 한다.
그리고 그럭저럭 용케 병원 안에서 세력가로 승승장구한다. 드라마의 매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 즈음에는 늘 볼썽사나운 꼴로 전락해버리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 문화의 문제점 중 하나로 속칭 ‘꼰대 문화’가 자주 회자되는데, 일본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이해관계와 체면에 신경 쓰고, 강자에게는 아첨하되 약자에게는 하대하고, 부하 직원들의 공로를 내 것인 양 도둑질해서 자기 이익에 활용하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일드를 시청한 그 어떤 근로자라도 내일 당장 회사에 출근해서 얼굴을 마주해야 할 누군가가 자연스레 연상될 정도다.(퍼뜩 떠오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미안하지만 그 ‘꼰대’가 혹시 당신 자신일 수도 있다.)
감정이입에 따라 유․불쾌가 결정되는 드라마
당신이 생각하기에 본인은 과연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모순과 부조리를 봐도 유야무야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묻어가는’ 다수파인가. 아니면 불의를 보면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 관념대로 행동하는 소수파인가.
정도와 기울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두 가지 유형 중 어느 한쪽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청자는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다수파나 소수파 중 한쪽 유형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편이냐에 따라 이 일드는 불쾌할 수도 유쾌할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배우 요네쿠라 료코는 이 일드 덕분에 일본 내에서 ‘시청률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2018년 현재까지 총 시즌 5개나 제작될 만큼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하는 드라마이므로, 아직 보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최소한 시즌 한 개만큼은 정주행하기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르겠으나, 시즌 5개 중 무엇을 골라보든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스토리 전개 양식이 시즌을 불문하고 거의 다 비슷비슷하니까. 포맷은 오십보백보인데 재미 하나는 끝내준다라 …… 어떤가, 왜인지 모르게 더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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