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언제 다시 집에 오는 거야

요양병원에서 본 그녀들의 눈부셨던 날들

by 써니데이

엄마는 올해 71세, 요양병원에서는 젊은 환자 축에 속한다.


71세가 젊다니.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엄마보다 열 살, 스무 살은 더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누워 계셨다. 90대, 어쩌면 그 이상. 엄마는 그 사이에서 정말이지 한참 어린 사람이었다.


병실을 돌아보는 시간은 늘 묘하다. 할머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상상이 시작된다. 지금 저기 저 손이, 한때는 어떤 밥상을 차렸을까. 저 눈가의 주름은, 어떤 웃음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것일까.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분들은 분명 다른 곳에 계셨을 것이다. 동네 어귀, 햇볕이 잘 드는 평상 위, 혹은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곱게 파마한 머리를 하고,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도란도란 앉아서.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처럼, 그 골목 어딘가에서 웃고 떠들고 계셨을 것이다. 일상 속의 젊은 아주머니들.


평상위 사진.png

그런데 지금 그분들은 여기, 이 하얀 병실 안에 있다.


입실하는 날, 엄마는 "이제 요양병원 가면 집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사실 같은 질문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질문은, 우리 둘 다 답을 알면서도 차마 알고 싶지 않아서 꺼낸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웃으며 "엄마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지"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위로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병실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저 할머니의 머리맡에 놓인 이름이 적힌 물티슈와 물컵. 침대 난간에 걸린 낡은 손수건. 누군가 갖다 놓은 귤 한 봉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시는 할머니. 이분들이 마지막으로 요리했던 그녀들의 부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마지막으로 입었던 고운 외출복은 옷장 어딘가에 아직 놓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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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게 참, 어느 순간을 딱 잘라 들여다보면 이렇게 낯설다. 파마머리로 골목을 누비던 그 젊은 아주머니와, 지금 침대에 누워 계신 그분이 같은 분이라는 것이. 그 사이에 수십 년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 안에는 누군가를 키우고, 웃고, 울었던 모든 날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지금 이 조용한 병실 한편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는 안다. 나의 엄마도, 그 골목의 파마머리 그녀 중 하나였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누비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수다를 떨고, 저녁이면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던 그 평범한 날들이. 엄마에게도 분명 있었다는 것을.


그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날들에 유효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는 것을.




요양병원 복도는 언제나 조용하면서 묵직하다. 간병사들의 말소리, 어디선가 낮게 깔리는 TV 소리, 복도를 지나는 간호사의 카트 소리. 그 소소한 소음들이 오히려 그 고요함을 더 깊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묵직함 안에는, 수십 개의 골목과 수십 개의 파마머리와 셀 수 없는 웃음소리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아무도 꺼내지 않지만, 그녀들의 찬란했던 그날들이.


엄마는 파킨슨병을 오랫동안 앓아오셨다. 그 세월이 이제 여기까지 왔다. 완치가 없는 병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꿈꾼다.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시절 골목을 누비던 건강한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이곳을 걸어 나오는 엄마를. 나빌레라.

배위의 사진_20260218_20080134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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