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그리고
아빠

헤아려 본다

by 써니데이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그 차갑고 무덤덤한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오래전에 떠난 아빠의 흔적과 삶을 다시 마주했다.


몇 줄의 행정 문서 속에는 아빠의 재직 기간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시간이 흐르며 이어진 나의 직장 경력들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서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숫자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했다.


아빠는 이 긴 시간을, 한 직장에서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출퇴근길에 차창 밖을 보며 문득문득 아빠의 출퇴근을 떠올린다. 그 시절에는 네비게이션도 없었고, 스트리밍 음악 플랫폼도 없던 때였다.


아빠는 그 긴 길 위에서 무엇을 들으셨을까. 라디오였을까,
아니면 좋아하던 음악을 담아둔 테이프였을까.
어떤 노래를 좋아하셨는지, 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아빠의 차 안에는 라디오 소리나, 몇 번이고 되감아 들었을 음악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아무 소리 없이, 그저 길 위를 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물을 수 없는 질문들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다. 조금만 더 일찍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당연히 올 줄 알았던 나중에, 그 언젠가가.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했던 시간은 어느 순간, 조용히 멈춰 있었다.

아빠는 늘 퇴근이 늦으셨다. 그땐 회사에 다니면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먼 거리의 출퇴근과 반복되는 하루를 아빠는 오랜 시간 이어가셨다. 네비게이션도 없이, 그 먼 출퇴근길을 몸이 먼저 기억하게 될 만큼의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말로 꺼내지 못한 고민도 분명 있었을 텐데.


어린 나는 아빠들은 다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출퇴근길에 음악을 듣고, 전화를 하고, 길이 막히면 네비게이션이 우회로를 알려준다.


아빠는 좋아하는 음악만 골라 담은 플레이리스트도, 실시간으로 바뀌는 길 안내도 없이 같은 길을 오랫동안 오가셨다.



서류 속 입사일과 퇴사일. 그 사이에 담긴 이야기는 한없이 깊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퇴근길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느새 나는 아빠의 시간을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아빠의 나이를 조금씩 향해 가면서부터 그때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아빠의 하루를 헤아려 본다.


그 사이에 담긴 이야기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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