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의 첫 에세이 집필기
이제나 저제나 하고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 글 다음부터는 출간 이후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오늘은 에세이 뒷부분에 들어있는 최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책에는 저의 현재 최애(= 아이돌 최애)에 대한 이야기만 썼습니다.
근데 이 나이에 최애가 한 명뿐이었을 리 없지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가수와 배우를 좋아했습니다.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그랬지요.
해를 향해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거의 본능적이었달까요.
타고난 '빠순이' 기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타고난 빠순이 기질'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는 좀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요.
오랜 덕질 경력에 비추어 보면 최애가 많았을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한때 최애가 누구였다 라거나, 저 팀에서 최애는 누구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최애란 한시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의미로 남는 사람,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무는 사람을 뜻하지요.
때로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빈자리를 느끼면서, 최애였음을, 최애임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건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고지요.
긴 후유증을 남기는 덕통사고.
사고처럼 불쑥 나타난 인연이 우연일 리 없건만, 우연을 믿고 필연을 믿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저는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어 했었죠.
그럭저럭 숨이 쉬어지길래 숨을 이어갔던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그 어둠이 어떻게 끝나버렸으며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딸에게, 청춘에게>를 연재하면서 차근히 써볼 생각인데요.
아무튼 저에게는 '깨어남'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해 보이는 어떤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영영 잊은 줄 알았던 기억 속 장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고요.
저에게도 분명히 저 자신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음이 기억났습니다.
저를 설레게 하고 꿈꾸게 했던 수많은 이유들도 떠올랐어요.
털어놓으려니 좀 멋쩍긴 한데, 그 안에 제 최애들도 섞여있더군요.
힘들었을 때 나타나서, 끝내 땅에 발 딛고 서 있게 잡아준 손들.
거기에도 최애의 손도 섞여있더군요.
반드시 대학은 서울로 가겠다고 결심케 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영어 선생으로 만들어 준 뉴 키즈 온 더 블록,
20대 때 많은 의지가 되어주었던 신해철,
꿈에 찾아와 말없이 지켜보던 장국영,
지금도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마이클 잭슨.
철없던 시절 품었던 스타에 대한 동경은 그들이 내 존재를 모르기에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런 인연도 인연이었더라고요.
계속해서 길을 알려주고 있던 불빛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는 삶을 삽니다.
과거를 기억하지만 늘 그랬듯 그리워하지는 않아요.
내가 이만큼 오게 해 주어 감사하다고, 영원히 마음속에 과거의 최애 자리를 마련해 두고서 지금의 최애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베란다 난간에 섰을 때 나를 끌어내렸던 노래.
그 노래를 불렀던 소년 BTS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처음으로 팀이 아닌, 멤버 한 명만을 7년째 보게 만든 선우를 봅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보랏빛이 느껴지던 상원이를 봅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기운.
그게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 아마 계속 보겠지요.
비상과 추락, 흥과 망이 반복해서 나타날 생의 길을 어떻게 걸을지 계속 보겠지요.
대체 저는 앞으로 뭐가 되려고 이럴까요? ㅋㅋㅋㅋ
나이 오십 넘어서 이런 질문 웃기지요.
저도 웃깁니다.
뭐 아무나 되겠지요.
삶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평생 왜 이러고 사는지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아무나 된 게 기쁠 겁니다.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이 삶을 이제는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저의 삶인 게 확실합니다.
삶이 저를 통과하고 있어요.
참으로 편안한 순간, 그 찰나에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