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정아, 그때 기억나?
네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엄마가 네게서 악취가 난다고 난리 쳤던 거 말이야.
그때만 해도 예민해진 감각에 적응을 못해서 화학적인 냄새를 악취로 인식했었지.
여태 한 번도 악취라고 느껴본 적 없던 섬유유연제 향이 그 냄새의 정체인 걸 알고는 헛웃음이 나왔어.
분명히 전에는 향기롭다고 느꼈었는데.
얘들아, 우리는 보고도 보지 못하고 느껴도 느끼지 못하는 게 많아.
감각 기관이 느낄 수 있는 범위가 100이라고 치면 실제로 인식하는 범위는 100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그마저도 사람마다 다르단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계를 설정하기 때문이야.
느끼고 알았으면서도 그 기억을 저장해 두지 않는 거지.
물론 너희는 한계 같은 거 설정한 적 없다고 하겠지만.
운동인 줄로만 알고 했던 요가와 더불어 얼렁뚱땅 시작한 명상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마음의 존재를 느꼈거든.
요가가 수행이라는 것을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명상에 대해 이런저런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을 거야.
나라는 인간은 항상 그랬거든.
환경적 조건이 먼저 갖춰져야 뭔가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항상 때를 기다렸고, 때를 기다리느라 때를 알아보지 못했지.
매 순간이 때였는데.
내 안에 깊고 검은 물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단다.
기쁨이나 행복 같은 단어만 떠올려도 거부감이 치밀게 만드는 심연이 거기 있었던 거야.
너희가 명상을 하지는 않더라도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보면 알 거야.
마음속에 꿈틀대는 뭔가가 있다는 거.
생각은 머릿속에서 말로 떠들지만 마음은 침묵으로 메시지를 전하거든.
너희가 그런 고요의 시간을 가질 때, 혹시 울음이 터져 나온다면 억지로 멈추려 하지 말고 실컷 울어버려.
그건 좋은 거야.
그 토해냄이 마음속 깊은 우물에서 자칫 익사할 뻔한 너희의 숨통을 트이게 해 줄 테니까.
내게도 여러 차례 그런 울음이 터졌어.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울었지.
켜켜이 쌓여있던 원망과 분노, 누군가를 해하거나 나를 죽이고 싶기도 했던 공격성과 그걸 눌렀던 기억까지도 차례차례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만났어.
예전에 내가 왜 그토록 죽고 싶었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라는 게 참으로 어이가 없더군.
내게 상처 준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
그 사람들에게만 친절한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악이라는 생각.
나는 그저 피해자라는 생각.
항상 '누구누구 때문에, 무엇 무엇 때문에'라는 생각.
전부다 내 생각이었을 뿐이더라고.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는 찾으려 들지도 않았으면서.
이게 내 마음에서 일어난 정화의 시작점이었단다.
그런데 얘들아, 마음이 정화되기 시작하면 몸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걸 알아두렴.
그래야 나중에 너희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을 테니까.
사실 나도 당시에는 왜 그런지 몰라서 걱정하기도 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 또한 정화였어.
조율이나 조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야.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 몸살인 줄 알았어.
다 나았나 싶으면 또 시작하기를 두세 달 정도 반복했었지.
독감이나 코로나인가 싶어 검사해 봤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어.
워낙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었다 보니 갑자기 요가를 해서 그런가 싶어 찾아봤더니 그렇기도 하대.
한약 먹으면 몸에서 명현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겨우 하루 10분의 요가가 그런 큰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기는 어려웠지.
원래 나는 감기몸살에 한 번 걸리면 며칠을 꼬박 앓아눕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더라고.
잠자리에 들 무렵부터 오한이 심하게 들고 열이 펄펄 나다가도 잠들었다가 깨면 또 멀쩡한 거야.
자기 전에는 매번 '이런 상태면 내일 일 못하겠다'싶은데 아침이면 또 괜찮아.
밤새 누구한테 온몸을 두드려 맞고 온 것처럼 뻐근하면서도 막상 몸을 일으켜 움직이면 아무렇지도 않고 일상생활에 문제도 없어. 참 희한하다 싶었지.
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더 자세하게 말해 줄 기회가 있을 거야.
내 경험에다 독서로 얻은 지식을 합쳐 알려줄 게 있거든.
우선은 다시 정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음에 이어 몸이 정화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길 했으니 이제는 진짜 청소 이야기를 해볼게.
너희도 가끔 뉴스나 기타 매체를 통해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지?
우리는 이걸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잖아.
'뭐 그렇게 쓰레기장은 아니었는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비슷했던 건 사실이지.
어렸던 너희는 당연히 잘못이 없었고.
내가 문제였는데 그때는 문제라는 것도 몰랐지.
어쩌다 너희 외할머니가 와서 치우기라도 할라치면 불같이 화를 냈던 내가 기억난다.
치밀어 오르는 화와 짜증.
그게 어디에 근거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당연히 몰랐고.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쓰레기를 치우고 싶어 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지.
쓰레기를 치우려면 그 쓰레기를 하나하나 다시 봐야 하거든.
마음속에 쌓인 쓰레기든, 진짜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는 쓰레기든 다 똑같아.
그걸 다시 대면할 용기가 없어서 못 본 척하고 그러다 보니 정말 눈에 안 보이게 되는 거야.
고요한 새벽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계속해서 좋은 단어나 문장들을 되뇌었어.
더 이상 거북스럽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는 안전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는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살짝 미소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단다.
얼마 만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웃었는지 몰랐지.
정말 평화로웠어.
그러고 눈을 떴는데 문득 집 안이 너무 어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는 게 그때 눈에 들어오더라.
그때부터 터뜨렸던 울음만큼 많은 청소를 했었지.
버리기도 하고 발견하기도 하면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하나하나 다 보았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무엇을 버릴 것인지,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청소를 하면서 깨달았어.
생각보다 나는 가진 게 많았는데 그걸 활용할 생각은 못했지.
물건뿐 아니라 모든 게 그랬어.
나한테 없는 것만 생각하면서 나는 왜 그거 없냐고, 왜 나만 없냐고, 징징거리고 떼쓰고...
유치하게도 내가 산 인생은 그런 거였더라.
마음을 청소하려 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지.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하지도 않는 사람, 시도하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는 사람, 내 문제를 남 탓으로 전가하는 사람.
똑똑한 척하며 살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걸 안 이상 똑같이 살 수 없게 되어버렸지.
내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상상이 이루어졌던 최초의 그 이상한 경험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알아보기로 그때 결심했던 것 같아.
삶에 목적이 있다면 그 호기심을 좇는 것도 그 목적의 일부일 것 같았거든.
점차 남들 눈에도 보일 만큼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나를 탐구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갔단다.
비워진 자리에 생겨난 공간을 오롯이 나로 채우고 싶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