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정아, 현아.
이번에는 엄마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
너희는 어떤 책을 좋아하니?
좋아하는 장르가 있어? 아니면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이미 너희는 너희만의 색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란다.
그러니 그냥 좋은 걸 더 열심히 즐기렴.
취향이 부르는 곳으로 갔다가 다시 취향이 바뀌는 곳으로 따라가면 돼.
책? 무슨 책? 별로 읽어 보지도 않은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든다면 엄마의 경험을 살짝 참고해 주렴.
독서가 제대로 독서다워진 건 불과 몇 년 전부터야.
말도 안 되는 것 같지.
항상 책 읽는 엄마를 보면서 자랐으니 말이야.
그런데 책이란 건 글 뒤에 사람이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사람 말을 귀담아들을 자세가 안 되어 있을 때는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겉만 알고 속은 모르는 독서가 돼.
꽤 오랫동안 내가 그런 독서를 하고 있었고 말이야.
블로그에 예전 독서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는데 읽어보면 아주 가관이야.
결핍과 허세가 정확히 보이거든.
'열등감과 질투심에 허덕이는 나'를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나'로 열심히 포장해서는 이 책은 이래서 별로고 저 작가는 저래서 별로고 이러면서 잘난 척을 얼마나 해놨던지.
저번에 내면의 안내를 받는 느낌에 대해 했던 말 기억하지?
의식의 깨침 이후 독서 또한 안내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되었어.
그때그때 읽어야 할 책이 정확한 타이밍에 손에 쥐어졌달까?
너희도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았니?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히 책을 펼쳤는데 그 속의 문장이 마치 내 생각에 답을 하는 것 같은 기분 말이야.
사실 이런 일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그 사람들 대부분이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넘겨버리고 말지만.
내게 딱 필요했던 문장이 거기 떡하니 있는 걸 발견했는데도 넘겨버릴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지금은 그게 더 신기할 정도지만 예전에는 나도 그런 사람이었지.
의식의 경계 너머 다른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여태 나라고 알고 살아왔던 모든 것이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어.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렸던 상상에도 완전히 흥미를 잃었지.
애초에 미래 같은 건 없다는 생각, 과거도 현재도 그 이름처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모든 찰나가 동시에 존재하는 트랙 같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되었던 것 같아.
의식이 트랙을 바꿔가면서 한 순간에만 머문다는 느낌이었지.
매일 새벽 명상을 하면서 생각이 점점 깊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무의식이 자꾸만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지 도무지 구별해 낼 수 없는 의문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책이 답을 주었어.
무슨 책을 읽으면 답을 얻을 수 있는지 내가 전혀 모르고 있는데도 그랬단다.
심지어는 그런 책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어.
너희도 알겠지만 나는 전형적인 T형 성격이라 논리와 증거를 꽤나 따지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갈수록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어.
시간이 직렬이 아니고 병렬인 것 같다는 감각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 같은, 사춘기 때나 잠깐 고민해보고 말았던 화두가 다시 돌아오더니 얼마 못 가 그 마저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기 시작했어.
'누구'인가를 알기 전에 '무엇'인가부터 알아야 했지.
그러다가 사람 이전에 나무였고 돌이었던 나를 보았단다.
본다는 감각은 오로지 눈이라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순간적으로 스치는 비전이었지.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나는 이 비전을 신뢰해도 될지 근거를 찾아야만 했어.
'나'라는 건 대체 뭔지, 존재한다는 건 또 뭔지, 깊이 들어갈수록 궁금해졌고 그럴수록 더 불안해졌어.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때마다 내면의 안내가 나타났단다.
오랜 시간 우울증을 겪으면서 이렇다 할 인간관계가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은 바로 책이었어.
생각이 나아가는 길목마다 책이 되어 나타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진짜 독서란 이런 거구나를 알았지.
나를 안내하는 힘의 정체도 근원도 몰랐지만 읽어야 할 책은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났어.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거닐다가 '여기 이런 책이 있네' 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뽑아 들면 '어, 나 이거 읽어야 돼'라고 마음이 속삭이는 것 같았지.
어떤 때는 빌리려고 한 책이 따로 있는데도 그 옆에 있는 책이 이상하게 끌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단순히 책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빌려왔는데 거기서 답을 얻기도 했어.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느낌.
나는 관찰되고 있었고 안내되고 있었지,
그렇게 나는 해독해 낼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났어.
<어린 왕자>처럼 이미 여러 번 읽은 책도 완전히 다르게 읽히더구나.
순수한 희열에 휩싸여 책을 읽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지.
의심 많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이 필요했지.
지성과 이성만을 숭배하던 내가 나 자신의 영적인 측면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주장이나 가르침으로는 어림없었던 거야.
책의 모습을 한 스승은 시대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나타나 주었어.
그 느낌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면서 배움의 속도가 빨라졌어.
그 와중에도 내가 의식적으로 애썼던 부분이 있는데 그건 균형이야.
너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했지.
현실 감각을 잃어선 안 되니까.
생각이 아무리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떠돌아다니더라도 몸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살아야 하잖아.
내면의 안내는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가에 따라 다른 책을 주었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출발하면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같은 과학책을 내밀고, 사유에 뿌리를 두고 출발하면 인문학, 철학, 영성, 종교를 만나게 되더구나.
그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문학도 빼놓을 수 없었고 말이야.
여태 나는 그런 것들이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극단이라고 생각했었어.
특히 과학과 종교는.
신의 존재를 가정하고 현상을 논하든, 가정하지 않고 논하든, 언제나 인문학이 앞서가고 과학이 뒤따라와 근거를 제시해.
입증된 부분이 많아질수록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간극은 좁아드는 거지.
그럴수록 점점 둘이 같은 얘기를 하게 돼.
출발점이 다른, 같은 이야기.
내가 본 건 그런 것들이었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은 불교 사상과 수행자들의 가르침에 이미 상당 부분 들어 있어.
내가 처음 의식의 깨침을 경험했을 때 느꼈던 세상 만물과의 연결감도 같은 경험을 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들어있음과 동시에 천문학에서 그럴듯한 근거를 찾을 수 있었지.
빅뱅 이후 원소가 생성될 때 만들어진 인(P)이라는 원소가 인간과 같은 생명체를 포함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들어 있다는 사실 같은 근거를.
물론, 누군가는 그걸 그렇게 연결시키면 안 되죠 이러면서 반박하겠지.
아마 그 반박이 무엇이든 그건 맞는 말일 거야.
다만 나는 가능성의 문을 모든 방향으로 열어 두고 싶다는 거야.
한 가지 사실에 한 가지 이유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다른 가능성의 문은 닫히니까.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보여.
파동으로 퍼져있던 전자가 관찰되는 순간 입자가 되는 것처럼.
모든 현상과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이기에 我와 非我의 구별은 무의미해.
슬프게도 우리는 그걸 몰라서 나와 남을 분리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
몸과 판단의 영역을 신봉하고 정신과 마음의 영역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는 하나를 깨달으면 그렇게나 거대해 보이던 세상이 나와 함께 움직이는 진동을 느끼게 돼.
세상에 여러 가지 파동이 존재함을 밝히는 과학자와 그 파동을 느끼는 수행자가 같은 사람이고 그 둘은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어,
세상과 공명하는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워졌어.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기에 한 순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더라.
수업시간은 더욱 활기가 넘쳤고 얼굴이 좋아졌다 표정이 편안해졌다 같은 소리도 듣게 되었지.
실제로 그랬으니 그럴 수밖에.
우스갯소리지만 이 무렵에 나는 사이비 교주가 왜 생겨나는지 알 것 같더라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아.
명상이라든가 여러 수행을 하다 보면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도 하거든.
무엇보다 뭔가를 직관적으로 바로 알 때가 있는데 이걸 대단한 예지력을 얻은 걸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해.
이건 시간이 직선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데서 오는 기시감이기도 하고 무의식의 반영이기도 해.
나 역시 그런 걸 많이 느꼈거든.
그런데 이걸 엄청 대단한 능력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라고 믿는 거지.
구원자니까 남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 말이야.
사이비 교주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남을 등 처먹는 사기꾼에 불과하다면 그 사람은 그냥 하수야.
진짜는 말이지.
진심으로 자신을 메시아라고 믿고 있을 거야. ㅎㅎ
신호를 포착하고 뭔가를 미리 알게 되더라도 그대로 흘려보낼 줄 알아야 더 놓은 수준의 의식 상태에 이르게 된단다.
이러한 상태는 전혀 특별하지 않아서 누구나 이를 수 있어.
구하고자 한다면 말이야.
하늘은 언제나 스스로 돕는 자를 돕거든.
엄마도 계속 연습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다음에는 포착되는 신호에 대해 얘기해 줄게.
너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신호라는 걸 알면 아마 놀랄지도 모르겠구나.
삶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알아차리느냐 알아차리지 못하느냐와 같은 뜻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