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에서 만난 우리

프롤로그

by 박유신

정아, 현아. 딸들아.

감사하게도 이런 날이 오네.

이런 날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지만, 결국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무슨 얘길 하려고 여기 이렇게 공간까지 마련해서 사뭇 거창하게 시작하는지 전혀 예상도 안 될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직은 모르겠어.

그냥 해주고픈 말이 많아.

하지만 어떤 단어를 골라 어떻게 다듬어야 너희에게 명료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천천히 풀어가 볼게.

잔소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으니 그건 안심해도 좋아.


어쩌면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를 전부 다 읽고 나서도 알듯 말 듯할 수도 있어.

그렇더라도 실망은 하지 마.

대신, 이상하게 사는 게 더 팍팍해졌다고 느껴지거나,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힐 것 같을 때, 다시 읽어 주렴.

그러면 전에 알아듣지 못했던 말의 의미가 마음으로 전해질 테니까.


얘들아.

앞으로의 글에서도 나는 자주 '얘들아'하고 부르겠지만 꼭 너희를 부르는 것만은 아닐 거야.

왜냐하면, 나는 이 글을 너희의 엄마로서만 쓰는 게 아니거든.

지구라는 곳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너희보다 먼저 태어난 딸로서 쓴다고 우선은 그렇게 이해해 주렴.


그런데 사실은 말이야.

꼭 딸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꼭 한국일 필요도 없고, 너희보다 과거에 태어난 사람일 필요도 없단다.

영혼의 수준에서 본다면 너희도, 나도, 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처음부터 완전하거든.

벌써 이야기가 어려워졌지?

이제 진짜로 차근차근히 쉽게 얘기해 줄게.


아, 그래도 한 가지는 미리 말해두고 싶어.

혹시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남 당해버렸다'라고 생각하고 있니?

사는 게 고통인 줄 미리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아직은 어떤 논리로도 너희를 설득시키지 못하겠지만 엄마는 어느 날 알게 되었단다.

태어남은 정말로 정말로 우리의 의사였다는 것을 말이야.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이 낯선 곳에 와서 기꺼이 모험을 하기로 선택한 용감무쌍한 영혼이었단다.

이제는 그 깨어남의 이야기를 너희에게 전할 때가 된 것 같아.


깨어남이 있으면 깨달음의 길이 시작돼.

엄마는 지금 그 길 위에 있어.

이번 생이 다하는 날까지 그 길은 계속 이어질 거야.

혹시 또다시 헤매는 일이 생기지 않게 그 첫 시작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해.

너희와 나 모두를 위한 위한 기록이지.

그리고 당연히 모든 지구인을 위한 기록이지.


2026년 2월 11일

써니, 유신, 엄마, 딸, 선생님... 불리는 모든 이름으로서의 내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