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껍질에 금이 간 날

첫 번째 이야기

by 박유신

얘들아, 너희 모두 <데미안>을 읽었으니 그 유명한 구절을 기억할 거야.

"새는 알 밖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p. 142, 보물창고)


엄마도 현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

해외문학도 문고판이라고 하는 간추려진 버전으로 웬만큼은 읽어보았거든.

독서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겠지만 지금 하려는 말은 이상하게 <데미안> 만은 그때 읽지 못했다는 거야.

지금은 누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헤르만 헤세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흔이 넘을 때까지 헤세의 작품은 단 한 편도 읽지 못했어.


정이가 데미안을 읽은 때가 방탄소년단의 <Wings> 앨범이 나왔을 때였지?

사실은 엄마도 그때 처음 읽었단다.

타이틀곡 <피, 땀, 눈물>뿐 아니라 <Boy meets evil>이라는 앨범 트레일러에서부터 전체 콘셉트가 유년의 <화양연화>를 벗어나 선과 악을 조우하는 소년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자만심이 가득했었나 봐.

감히, 알 밖으로 나오려는 새를 안다고 생각했거든.

새가 태어나려면 껍질을 깨는 게 당연하잖아.

이 당연한 말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


그런데 말이지.

엄마가 그 새였어.


나에게는 껍질이 깨어졌던 확실한 순간이 있었단다.

그때 알았지.

헤르만 헤세가 왜 그런 글을 썼으며 왜 사람들이 그 문장을 가슴에 품는지.

새였던 거야, 우리 모두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를 잠깐 상상해 보렴.

알을 깨기 전에도 새는 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어.

답답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도 살아 있었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에 이미 태어나 있었던 거야.

껍질 속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그대로 있을 수도 있었던 거야.

머지않아 죽겠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가 그래.

이미 세상에 도착해 있고 살아가고 있지.

하지만 이곳이 껍질 안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세계가 부서지고 그 세계의 내가 죽어야 진정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매트릭스>라는 옛날 영화가 있어.

최근에 그 영화를 다시 봤는데, 예전에 보았던 재미난 액션 영화가 아닌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 있더라.

주인공이 죽었다 살아나는 게 뻔한 클리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더라.

새로 태어나서 네오 Neo가 되어야만 했던, 전에는 몰랐던 개연성이 이제는 보이더라고.

신기했어.

내가 변함으로써 과거에 보았던 영화도 달라지는 게.


어떤 사람은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너희처럼 어린 나이에도 내면을 들여다보며 혜안을 얻더구나.

또 어떤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고나 발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는 경험을 한 후에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가기도 해.

엄마는 어땠을까.


나는 좀비와도 같았던 시간을 오래 보냈지.

이 작은 세계에서는 우울증이라거나 공황장애 같은 이름을 붙여두었지만 사실 그 시간은 내가 알 속에서 뒤척이던 시간이었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간이 올 때까지 나는 기다려야 했던 거야.

그 시간을 견뎌야 깨어남이 오도록 계획해 두었던 모양이야.


누가 계획해 두었냐고?

혹시나 어떤 신의 이름이라도 나올까 기대하는 건 아니지?

지금 그 대답을 듣고 싶다면 이렇게만 말해 둘게.

그 계획은 우리가 아는 모든 신이 계획했고, 그 모든 신은 나이며, 때문에 내가 계획한 거라고 말이야.

언젠가 이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어쨌든 그 계획에 따라 마침내 알람 시계가 울렸고, 깨어남의 시간이 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너희에게 내가 알게 된 것을 전해줄 시간이 있으니 말이야.

너희를 낳아 길렀던 시간 동안 엄마는 '내 정신이 아닌 나'를 감추느라 무척 애를 썼어.

그래도 가끔씩 터졌던 감정적 기복과 아무리 감춰도 감출 수 없던 우울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네.


내 알람 시계는 내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울리지 않더라.

항상 '아닌데? 더 내려갈 곳 있는데?' 하더라고.

분노와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서 죽고 싶었고, 죽고 싶어 하는 나를 계속 설득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


알람이 언제 울렸는지 아니?

'야, 너 이제 진짜 죽을 수 있는데. 죽을래?'라는 질문이 툭 하고 내 앞에 던져졌을 때였어.

그때 기억하지?

엄마가 자궁에 혹이 생겨서 수술했던 일.

그게 신호였어.

그 혹은 암으로 변이중이던 세포덩어리였거든.


죽음은 항상 저 멀리 있어서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여겼는데 아니더라.

굉장한 착각이자 오만이었지.

생()과 사(死)는 서로의 극점에 있는 줄 알았는데 손바닥과 손등처럼 붙어있더라고.


정말 내가 죽고 싶은 게 맞나?

처음으로 엄마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내 마음속 심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

알껍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거지.

그래도 아직 껍질의 존재를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었어.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였지.


이다음엔 정말로 그 껍질이 깨져버린 2023년 5월 15일의 이야기를 해줄게.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생생한 그 기억을 공유할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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