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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향, 딥티크(Diptyque) 34번가

향수와 나의 특별한 인연

by Sunny Sea

향수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이자, 내 존재를 은은하게 알리는 또 하나의 언어다. 그중에서도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내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남긴 향수다. 이 향수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딸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게 선물해준 것이 첫 만남이었다. 평소에도 향수를 즐겨 쓰긴 했지만, 딥티크 34번가 생제르망은 이전에 써본 어떤 향수와도 달랐다. 뚜껑을 열고 처음 시향했을 때, 나는 마치 파리의 오래된 서점과 부티크, 그리고 그곳을 스치는 바람 속에 섞인 다양한 향기가 한순간에 내게로 몰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향수의 이름은 무척 길고, 처음엔 발음도 쉽지 않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도 프랑스어 특유의 음을 정확히 소리 내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Diptyque 34 boulevard saint germain”을 한글로 읽으면 “딥티크 뜨르엉뜨 카뜨흐 봉르바르 쎙제흐맹”쯤 될 텐데, 실제로는 ‘딥티크 34번가 생제르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향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물을 때면, 나 역시 그냥 “딥티크”라고만 답하곤 했다. 딥티크에는 다양한 향이 있고, 이 긴 이름을 정확히 전달해주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알려주더라도 상대가 기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향수병의 독특한 모양과 라벨의 글씨체를 시각적으로 머릿속에 입력해두라고 권한다. 공항 면세점이나 백화점 향수 코너에 갈 때마다 꼭 내 향수를 찾아 눈도장도 찍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렇게 하면서 나와 이 향수는 점점 더 각별한 사이가 되어갔다. 향수가 다 떨어질 즈음이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사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사실 아직 한 번도 내가 직접 산 적은 없다. 이 향수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향수가 떨어지기 전이면 언제나 딸이 무슨 기념일이나 가족 모임을 핑계 삼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37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며 언어의 소리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법을 익혀온 나에게, 이 향수의 이름과 병 모양은 단어 이상의 의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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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향수를 뿌리고 외출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는 향이 나를 감싸며,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스스로를 조금 더 특별하게 느끼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을 손에 들었다. 놀라운 건, 이 향수를 뿌리고 나갈 때마다 주변의 반응이 늘 긍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가끔은 지인들이 “오늘 무슨 향수 썼냐”고 묻기도 하고, 향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혹시 딥티크 34번가 생제르망 아니에요?”라며 먼저 집어내기도 했다.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과 좁은 공간에서 잠깐 함께 작업을 할 때도, “향이 너무 좋다”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곤 했다. 나 혼자만 좋다고 생각했던 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긴다는 사실이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러 들어가던 날이었다. 수업 시작 전, 교실 중간쯤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갑자기 “선생님, 향수 뭐 쓰세요?”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잠시 주춤했지만, 뜻밖에도 “요즘 용돈 모아서 엄마께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학생들까지도 이 향기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만큼 이 향수가 가진 힘을 새삼 실감했다.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매우 복합적이고 유니크한 향조를 가진 니치 향수다. 그린, 우디, 플로럴, 스파이시, 레진 등 40여 가지의 원료가 조화롭게 섞여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향이 레이어드된다. 그래서인지 이 향수는 특정 성별이나 연령에 국한되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잘 어울리는 유니섹스 향수로 유명하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남녀 구분 없이 이 향수를 사용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향수는 어떤 사람, 어떤 체취의 사람과 잘 어울릴까?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자연스러움과 세련됨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 복합적이고 변화무쌍한 향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의 취향이 분명한 사람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대중적이고 단순한 향보다는, 약간은 독특하고 복잡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된다. 나는 평소에도 남들과 똑같은 것보다는 나만의 색깔과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 향수가 내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체취 역시 향수의 발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중성적이고 깨끗한 체취, 적당한 유분과 수분을 가진 피부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세련된 잔향을 남긴다. 너무 건조하거나 유분이 많은 피부에서는 향이 날아가거나 무거워질 수 있지만, 적당히 촉촉하게 관리된 피부에서는 이 향수의 복합적인 노트가 아름답게 발현된다. 나는 평소에 피부 관리를 아주 정성들여 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과 피부 자체가 이 향수에 최적화되어 있는 듯하다. 향수 뿌리기 전에는 반드시 손목과 목덜미 등 온 몸을 깨끗이 정돈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이런 습관도 내 체취와 향수가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똑같은 향수라도 사람의 본래 체취와 잘 어우러져야 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사람마다 피부의 pH, 유분, 수분, 미생물, 그리고 고유의 체취가 다르기 때문에, 향수의 향료 분자들이 각자의 피부에서 다르게 반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피부가 산성일수록 어떤 향은 더 강하게, 어떤 향은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피부의 미생물 역시 향수 성분을 분해하거나 변형시켜, 각기 다른 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향수 전문가들도 반드시 자신의 피부에 직접 시향해보고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향수와 체취의 상호작용은 마치 화학 반응과도 같다. 향수는 공기 중에 뿌렸을 때와, 피부에 닿았을 때,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다른 향을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고유한 향이 완성된다. 결국, 향수는 내 피부, 내 체취, 내 라이프스타일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나만의 향기’가 된다.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이런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이 향수는 내 취향과 특징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세련됨, 복합적인 향의 변화,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완벽한 조합이다. 내가 이 향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단순히 향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체취와 이 향수가 조화를 이루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내 취향과 특징이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이 잘 어울리는 사람의 조건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고,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취향을 소중히 여기며, 향수에 대한 애정과 경험이 깊은 나. 이 향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향수는 기억을 소환하고, 감정을 일으키며, 결국 내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은 내게 ‘나 자신을 잊지 않는 용기’를 선물했다. 이 향수를 뿌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 일상에 지칠 때, 이 향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 복합적이고 세련된 향은 내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속삭인다.


오늘도 나는 이 향수를 뿌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목 언저리에 분사된 파리의 공기, 그리고 내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나는 더 당당하게, 더 나답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 향수를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딥티크 34 Boulevard Saint-Germain, 이 향수는 앞으로도 내 곁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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