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김밥을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참기름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부드러운 밥알이 입안에서 살포시 풀린다. 담백한 참치와 짭짤한 단무지가 어우러져, 김밥 한 줄이 이렇게나 다채롭고도 정겨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부엌에서 김밥을 싸주시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부드럽게 부쳐낸 계란 지단, 오이와 당근의 아삭한 식감, 입안 가득 퍼지던 그 정성스러운 맛. 김밥은 언제나 내게 추억과 함께 찾아오는 따뜻한 위로였다.
직장 생활로 늘 바빴지만, 아이들 소풍이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밥을 고슬고슬 짓고, 참기름을 넉넉히 둘러 밥알에 고소한 향을 스며들게 하면 부엌 가득 퍼지는 향이 나를 먼저 깨운다. 오이와 당근을 곱게 썰고, 계란 지단을 정성껏 부쳐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며 김 위에 올릴 때면 마음도 함께 차분해졌다. 우리 가족은 뭐든 잘 먹는 편이라 김밥을 싸도 큰 걱정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특히 치즈를 듬뿍 넣은 참치 김밥을 좋아했다. 그래서 언제나 참치와 치즈를 넉넉히 준비해 듬뿍 담아주곤 했다. 아이들이 “끝 조각 언제 나와?” 하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끝 조각을 하나 집어주면 아이들과 남편은 “맛있어!” 하고 활짝 웃으며 엄지척을 해준다. 그 모습이 나를 한껏 기쁘게 하고, 마음 한가득 행복이 차오른다.
사실 이런 생활은 내 작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아침 출근 시간이 허둥대거나 늦지 않게 하려고, 일부는 미리 준비해두었다. 아이들의 소풍 전날 밤이면 부엌은 늘 바빴다. 시금치는 삶아 푸른 숨을 죽인 뒤 물기를 꼭 짜두고, 계란 지단도 부쳐 곱게 썰어두었다. 당근과 오이를 고르게 손질한 뒤, 갓 지은 밥 위에 참기름을 넉넉히 둘러 부엌 전체를 고소한 향으로 채웠다. 준비를 마치고 나면 자정을 훌쩍 넘기곤 했지만, 겨우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서는 그 시간이 늘 설렘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그 작은 부엌에서의 분주함이 나를 더 살아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 새벽부터 부엌에 서서 김밥을 싸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김밥을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김밥을 사서 보내면 훨씬 편하고, 맛도 다양하게 고를 수 있겠지만, 손수 재료를 준비해 밤늦게까지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싸는 그 모습 자체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께 내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내 손끝에서 묻어나는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아이의 정서에도 작은 울림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김밥만큼은 언제나 내 손으로 싸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너무 피곤해 깜빡 늦잠 자서 긴급히 남편이 새벽기도 다녀오는 길에 사온 김밥을 보낸 적이 딱 한 번 있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내 손끝으로 김밥을 말았다. 가끔은 도시락 하나를 더 싸서 아이 담임선생님께 “아이와 함께 드세요” 하고 보내기도 했다. 내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기운을 아이와 남편이 고스란히 느끼는 것 같아, “엄마가 김밥을 해주는 날은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진다”는 그들의 말이 나를 한층 더 행복하게 해줬다.
김밥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과의 추억이 이어진다. 함께 먹는 그 순간의 행복을 위해 재료를 고르고, 참기름을 듬뿍 바른 김밥을 정성스레 말아내는 그 과정이 내겐 소중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특히 김밥의 끝 조각은 만드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보너스다. 고소한 끝 조각을 살짝 베어 물면, 짭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고, 그 맛이 가족의 웃음으로 이어질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이들도 그 맛을 좋아해, 김밥을 자를 때마다 “엄마, 끝 조각은 누구 몫이야?” 하고 웃으며 묻는다. 그래도 이내 “맛만 봐야지” 하며 접시에 예쁘게 담아두고, 함께 나누는 그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김밥은 그저 한 줄의 음식이 아니다. 그 속에는 단순히 재료를 엮은 맛의 조화만이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사랑의 방식, 그리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김밥 속재료는 무궁무진하게 변주될 수 있는 만큼, 내 마음도 그때그때 새롭게 담긴다. 유통기한이 긴 단무지나 맛살, 우엉 같은 재료는 수시로 냉장고에 채워두었다가, 때로는 볶은 김치나 불고기, 파프리카를 꺼내 즉석에서 김밥을 싸기도 한다. 바쁘고 힘들어도 ‘지금 김밥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면 망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 방식의 소박한 사랑이다.
앞으로도 이 작은 부엌에서, 부드럽고 고소한 향기와 함께 나의 마음을 말아내는 이 시간이 계속되길 바란다. 김밥을 싸며 내 마음도 한 겹 더 두툼해지고, 가족의 웃음 속에 나의 사랑이 스며든다고 믿는다. 그렇게 김밥 한 줄로 이어지는 소소한 기쁨이, 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지켜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