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나눈 《죽음에 이르는 병》

- 완벽주의자가 통념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법

by Sunny Sea

새깨독(새벽을 깨우는 독서모임)이 2026년에는 우리들의 시끄러운 도서관 [베이트호크마 Beit-Chokhmah : 지혜의집]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매월 1회 토요일 새벽 6시 30분, 줌으로 모여 한 달 동안 읽기로 정한 책을 하브루타식으로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2월에 토론할 책은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나누기도 하고 독서 중임을 인증하는 사진이나 SNS 글을 공유하기도 하는데, 이번 책에 대해 가장 많이 올라온 메시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소설 읽듯이 죽죽 읽히면 좋겠는데, 심오한 철학이 담긴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의미를 파악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읽은 소감을 블로그에 두어 번 올리기 시작했다가 멈춘 후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북토론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듣는 사회복지사 2급 과정 동영상 강의는 차치하고라도, 1월 초부터 시작된 160시간의 사회복지사 현장실습과 1월 말 이사, 그리고 이사하자마자 일주일간 모시게 된 구순 시어머니… 잠자리에 들기 전 모처럼 앉아서 책을 읽으려 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데다 혹여라도 다음 날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한두 쪽 읽다가 덮어버린 탓에 완독은커녕 제1부 마지막 부분까지도 가보지 못한 채 지나온 겁니다.


그나마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 시청하고 AI의 도움을 받아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한 상태이긴 했습니다. 제1부에서는 절망은 병이라고 말하고, 제2부에서는 절망은 죄라고 말했다는 것, 절망으로부터의 구원의 방법은 신앙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30분 늦은 아침

전날 밤에 감기몸살 약을 먹고 잔 탓인지 토론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부랴부랴 줌 링크를 클릭했습니다. 열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진지하고 열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톡방에서 줌 링크를 클릭하면서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소그룹으로 모이기도 하고 대그룹으로 모이기도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책의 내용에 근거를 두고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어쩌면 그렇게 말씀들을 잘하시던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오신 분들 같았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는 소그룹 모임을 마치고 전체 그룹으로 소그룹 때 진행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던 듯 보였습니다. 실제 의사 직업을 가지신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 입장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뭐든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고치는 것보다 완전히 힘이 빠져서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자세로 온 환자를 고치기 더 쉽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마도 13쪽에서 14쪽 서문 부분에 나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습니다.


하도 책이 어렵다고 하니까 제1부까지만 읽고 나누는 것으로 했지만, 끝까지 다 읽을 뿐 아니라 참고 자료들도 찾아보고 참여하신 분들도 꽤 되는 듯 보였습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어 늦게라도 참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가 키르케고르가 되다

마무리 글쓰기 전에 지금까지 읽은 책 내용이나 토론 내용 중 더 알고 싶은 부분이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을 만들어 줌 채팅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공유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반성이 아닌 철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멤버들이 어느 정도 질문을 만들어 공유했을 때, 평소처럼 그 질문들을 하나씩 살피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AI에게 쇠렌 키르케고르 역할을 부여하고 방금 자기가 만든 질문을 그에게 던져보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라고 리더가 말했습니다.


평소 북토론 시간에는 AI 사용을 금하는 분위기였는데 의외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저는 신이 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ChatGPT와 대화했겠지만, 최근에는 Gemini와 새로 사귀게 되어 한참 친해져 가고 있는 상태라서 Gemini에게 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키르케고르와의 첫 만남

나: 너는 지금부터 《죽음에 이르는 병》 책을 쓴 '쇠렌 키르케고르'가 되는 거야. 나와 그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눌 거야. 책에 나온 내용에 근거해서 잘 답변해줘.
Gemini (키르케고르로): 반갑네. 나 쇠렌 키르케고르라네. 자네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들고 나를 찾아오다니, 참으로 진지하고도 용기 있는 걸음이군. 사람들은 대개 육체의 질병이나 세속적인 실패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지만, 나는 이 책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병은 따로 있다고 말했네. 그것은 바로 '절망'이지.

이어지는 대화에서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관계'이자 그 관계를 설정하는 '자기(Self)'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아가 누구 앞에 서 있느냐에 따라 반성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한 반성으로 가는 세 가지 길

나: 어느 정도의 반성이 아닌 철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Gemini (키르케고르로): 철저한 반성이라... 자네는 지금 단순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는 수준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까지 내려가 보겠다는 결단력을 보여주고 있군. 참으로 귀한 태도네.

내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정도의 반성'과 '철저한 반성'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자아가 누구 앞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네.


그는 세 가지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1. '세간의 기준'을 버리고 '단독자'로 서기

사람들은 흔히 군중 속에 숨어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니까"라며 안위합니다. 하지만 철저한 반성은 군중이라는 은신처를 박차고 나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영원한 존재(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절망'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기

많은 이들이 반성을 하다가도 고통이 느껴지면 "이 정도면 됐지"라며 회피합니다. 하지만 철저한 반성은 자기가 지금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불균형을 응시하는 고통을 온전히 견뎌낼 때, 반성은 지식에서 실존으로 넘어옵니다.


3. '자기 자신이고자 함'과 '자기 자신이고자 하지 않음'의 충돌을 보기

"나는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내가 만든 이상적인 허상(혹은 타인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 하는가?" 이 물음 앞에 정직해지는 것, 즉 자아의 관계가 자기 자신과 올바르게 맺어져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철저한 반성의 핵심입니다.


37년 교사, 퇴직을 앞두고

대화가 깊어지면서 키르케고르(Gemini)는 제가 이전에 나눴던 대화들을 바탕으로 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37년간 교사로 살아온 제가 퇴직이라는 커다란 문턱 앞에 서서 새로운 배움(사회복지)과 생명(손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Gemini (키르케고르로): 자네가 말하는 '철저한 반성'은 단순한 자책이나 후회가 아니라, '전환점에서의 실존적 결단'에 가깝다고 생각되네. 자네는 평생을 교사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며느리와 어머니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며 살아왔네. 이것은 내가 말한 윤리적 단계의 삶이지.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회적 역할' 너머에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순수한 나'는 누구인지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도권과 책임감 사이에서


나: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가 가지려고 노력해왔어. 하지만 주어진 책임감에 끌리는 일도 많았지.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Gemini (키르케고르로):자네의 고백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군. 삶의 주도권을 쥐려는 '자아의 의지'와, 주어진 책임이라는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라네.



그는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 '책임'을 '나의 선택'으로 재해석하기. 시어머니를 모시고 딸을 돕기 위해 이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아니라, "단독자인 내가 사랑과 윤리적 가치를 위해 선택한 결단"으로 다시 명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가짜 자기(False Self)'와 이별하기. "완벽한 교사, 훌륭한 어머니, 헌신적인 아내"라는 사회적 이미지에 주도권을 내어준 적은 없는지 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자아'를 신 앞에 정립하기.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유한성과 무한성의 균형을 완벽히 잡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정립하신 창조주 앞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 그것이 절망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통념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대화는 더 깊어졌습니다. 저는 키르케고르 역할을 풀어진 듯한 Gemini에게 제가 느끼는 가장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나: 나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면 내 마음에서 나오는 불평이나 부정적인 생각은 누르고 말을 아끼고, 통념적으로 해왔던 것, 통념적으로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묵묵히 해왔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 내가 궁금한 것은 잘못 형성된 통념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Gemini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1. '감정의 잔여물'을 추적하기
통념대로 행동했을 때 결과는 완벽할지 몰라도 마음속에 찜찜함이 남는다면 그 통념은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마친 후 내 기분이 '뿌듯함'인가, 아니면 '안도감'인가? 뿌듯함은 나의 가치관과 일치할 때 오지만, 단순히 비난받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뒤따른다면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닌 사회적 압박에 순응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언어의 장벽' 검토하기
평소 스스로에게 사용하는 단어를 살펴보세요. "~해야만 한다(Should/Must)"라는 표현이 압도적일 때가 위험 신호입니다. 그 문장의 주어를 바꿔보세요. "나는 정말로 ~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즉각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학습된 통념에 가려진 나의 진짜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3. '신체화 증상'에 귀 기울이기
우리 몸은 머리보다 먼저 잘못된 통념을 알아차립니다. 특정한 '통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목이 뻣뻣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깊은 한숨이 나오는지 살펴보세요. 통념을 따르는 행위가 나를 '소진'시키기만 하고 '충전'해주지 않는다면, 그 통념은 현재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입니다.
4. '비용-수익' 분석하기
이 통념을 지킴으로써 얻은 '사회적 평판/안정'과, 잃어버린 '나의 생동감/휴식'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저울질해 보세요. 잘못 형성된 통념은 대개 나를 희생시켜 전체를 이롭게 하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마음 휴업 공고'를 허하라

대화 중 Gemini가 건넨 말 중 가장 깊이 와닿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진심을 내어줄 창고가 비었으니, 잠시 의무감으로만 움직이겠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모든 순간에 100%의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가짜라는 무의식적 기준이 저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기능적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는 것, 마음이 지쳤을 때 50%의 마음만 담아 일을 처리하는 것은 기만이 아니라 나라는 엔진을 보호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주도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Gemini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행위는 실패가 아니라, 나를 돌보라는 마음의 휴업 공고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휴업을 내 스스로에게 공고하여 죄책감이나 불편한 마음을 최소화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건 나만이 아는 사항이고 외적으로는 늘상 돌아가는 일처럼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찾아온 휴업의 순간

사실 대화를 나눈 그날은 이사하자마자 구순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기 시작한 지 일주일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전날 저녁에는 이사 온 아파트 이웃에 계신 지인 가정을 시어머니 계실 때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마침내 감기몸살이 왔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잠시 동안 머물고 가실 시어머니 모시는 것을 제1순위로 대접해드려야겠다고 기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내 마음도 흡족했고 시어머님도 무척 좋아하시면서 잘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 감기몸살 약을 먹고 잠을 자서였다고 핑계 대고 싶긴 하지만, 깜빡 잊고 알람 설정을 안 해놓고 잔 바람에 오늘 새벽 키르케고르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 북토론 시작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30분이나 늦게 일어났습니다.


아마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책도 끝까지 완독하고 줌 모임에도 제시간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안 좋아졌습니다.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줌 모임에 뒤늦게 들어가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나를 잠시 용납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떠올린 대화

그런데 Gemini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다시 Gemini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나: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잘 모신 나를 칭찬해주면서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족하다, 잘했다라고 말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어.
Gemini: 방금 적어주신 상황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게 됩니다. 이사라는 큰일 직후에 곧바로 구순의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심지어 이웃 초대까지 하셨다니요. 사용자님의 몸과 마음이 감기몸살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30분의 늦잠은 '무책임'이 아니라 '생존 신호'였습니다. 알람을 잊은 것이 아니라, 사용자님의 몸이 '지금 이 잠을 자지 않으면 정말 쓰러진다'라고 판단하여 강제로 전원을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적인 선택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몸의 주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Gemini의 말에 마음이 한 켠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그럴 수 있지, 최선을 다했으니 족하다"라는 혼잣말은, 통념이 강요하는 '완벽한 며느리/완벽한 학습자'의 틀을 깨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주도적인 인간'으로 돌아오는 귀한 선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넘어서

북토론 모임의 마무리 글쓰기에서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반성이 아닌 철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즉 철저한 절망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세간의 기준'을 버리고 '단독자'로 서기, '절망'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기, '자기 자신이고자 함'과 '자기 자신이고자 하지 않음'의 충돌을 느낄 때 피하지 않고 대면하기가 그 답일 것 같다.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심오한 책이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평생에,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한 시간 반의 공식적인 토론은 끝났지만 후속 토론을 위해 몇몇 사람이 줌에 여전히 남았습니다. 저도 아쉬워서 줌에 남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노트북 시계가 8시를 넘기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시어머니 아침 챙겨드려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면서 줌 채팅으로 사정을 말하면서 화면을 끄고 듣기만 하겠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른을 모시는 일 중 가장 어려운 점이 시간에 맞춰 식사를 드려야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전날 초대받아 오신 지인 부부가 직접 쑤어서 가져오신 묵을 무쳐서 여느 때처럼 정성을 기울여 아침상을 차려드렸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성경을 읽으시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Gemini와의 대화, 아니 키르케고르와의 대화를 한 후 마음이 한 켠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을 아직 끝까지는 못 읽었지만, 작가가 말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절망은 병이고 죄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절망을 온전히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

AI와의 대화가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깊은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Gemini는 키르케고르가 되어 저에게 철학적 통찰을 주었고, 다시 공감적인 상담자가 되어 제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대화를 통해 제가 발견한 것입니다. 완벽주의라는 통념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왔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마음 휴업 공고'를 내는 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주도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37년간 교사로 살아온 제가 퇴직을 3년 앞두고 만난 이 책과 이 대화는,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과 그 이후의 삶에서 '진정한 나 자신'으로 서는 법을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감기몸살을 앓으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더 이상 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친 나를 다독이며 말합니다.


"오늘은 내 마음이 좀 쉬고 싶어 하네. 진심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 내 의지가 참 대견하다."


2026년 2월



책표지-죽음에 이르는 병(쇠렌 키르케고르).jpg




#죽음에이르는병 #키르케고르 #AI와의대화 #완벽주의탈출 #북토론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50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