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사 공부하다 '덤'으로 얻은 선물, 병원동행매니저 자격증
37년째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에게, 누군가 "퇴직 후 계획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사실 뚜렷한 답이 없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청사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제2의 직업을 향한 치밀한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얻는 깨달음이 좋아서 사회복지사 2급 과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60시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반복하는 일상은 솔직히 만만치 않습니다. 교사라는 본업을 이어가면서 학생의 자리에 다시 앉는 일은 가끔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버겁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배움이 채워주는 기쁨은, 그 어떤 피로와도 맞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는 순간의 짜릿함, 실습 현장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넓어지는 세상에 대한 시야 — 이것들이 저를 계속 앞으로 걷게 합니다.
그런데 이 배움의 여정에서 예상치 못한 선물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사 전공 과목들을 차근차근 수강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심리상담사, 부모교육 지도사, 특수아동 지도사 자격증이 손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병원동행매니저' 자격증까지 더해졌습니다. 처음부터 이 자격증들을 목표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씩 받아 들 때마다 그 기쁨이 더 각별합니다. 거창한 꿈을 향해 투쟁하듯 달려온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니 곁가지에서 예쁜 열매들이 맺혀 있던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수확이 주는 뜻밖의 기쁨을, 여러분도 한 번쯤은 느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병원동행매니저'라는 이름이 아직 생소하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저도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이런 역할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병원동행매니저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홀로 병원을 찾기 어려운 1인 가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 과정을 함께하는 전문가입니다. 단순히 옆에서 부축해 드리는 것을 넘어, 접수부터 수납, 진료 내용 메모, 약 수령까지 꼼꼼하게 챙깁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아무리 익숙한 사람에게도 긴장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낯선 의학 용어, 복잡한 원무 행정, 오래 기다리는 동안의 막막함. 병원동행매니저는 바로 그 불안의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 병원 행정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 능력이 핵심입니다.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요.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고령 인구가 늘어가는 지금, 병원동행매니저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따뜻하게 닿을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제 서랍 속에는 꽤 여러 장의 자격증이 쌓였습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저는 '자격증 부자'가 된 뿌듯함보다, 이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더 자주 빠져듭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 힘을 느꼈습니다. 이사하자마자 일주일간 구순의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는데, 매 끼니를 챙기고 곁에서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내내 사회복지 공부에서 배운 것들이 조용히 빛을 발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실습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심리를 더 입체적으로 읽게 되고, 말 한마디를 건넬 때도 더 조심스럽고 따뜻해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대학에서 배운 교육학과 37년간의 현장 경험이 이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르신을 대하는 법도,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도 — 어느 정도는 이미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 바뀝니다. 내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들 사이로, 어느새 시대가 흘러가면서 새롭게 주의해야 할 것들이 조용히 끼어들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의도적으로 배우러 나서지 않으면 좀처럼 업데이트되지 않더군요. 오랜 경험이 오히려 '이미 다 안다'는 착각의 방패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 공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곧 태어날 손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제 자녀들을 키울 때는 직장을 다니며 시부모님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아이들을 맡기면서 늘 바쁘고 피곤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아이가 자라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보다,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한발짝 멀찍이서 바라보며, 서두르지 않고 곁에 있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쁩니다.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뜻밖의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맡겼던 어린이집, 시부모님 댁, 유치원이 이미 사회복지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회복지와 닿아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이 공부가 특정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해두면 좋을 분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요즘 손주 육아를 거부하는 조부모들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해 온 분들이 노년까지 그 역할을 이어가기 싫다거나, 체력적으로 어렵다고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자식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모른 척하기란 저는 아직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 그 시절 시부모님과 여러 돌봄 기관의 도움 덕분에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에서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퇴직 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기꺼이 하는 것이 제 마음도 편하고, 자녀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작은 조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퇴직 후의 그림도 조금씩 그려집니다. 반드시 전문직으로 일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이웃에게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동네 어르신 옆에 앉아 드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37년간 쌓아온 교직 경력과 이 돌봄의 전문성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아직은 흐릿하지만 설레는 가능성을 향해 천천히 상상을 펼쳐 보고 있습니다.
공부는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목표했던 것보다 더 넓은 곳으로,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제 삶의 지평을 조용히 넓혀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한 공부.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곁에 있기 위한 공부. 그것이 지금 제가 책상 앞에 앉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남은 과목들도 즐겁게 완주하며, 이 '덤'으로 얻은 소중한 도구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고민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온기로 닿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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