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웠습니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 지 꽤 되었는데, 이란-미국 간의 전쟁 소식으로 치솟은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에 들어서는 마음이 가벼울 리 없었지요. 집 근처 셀프 주유소에 차를 세웠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셀프 주유소를 꺼렸습니다. 주유 건을 어떻게 잡는지, 화면은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혹시 잘못해서 기름이 튀진 않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직원이 직접 주유해 주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세상은 점점 사람이 아닌 기계가,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두 번의 시도 끝에 이제는 익숙하게 주유를 마쳤습니다. 처음의 그 막막함은 사라지고, '이젠 이것도 할 줄 아네'라는 작은 성취감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주유를 마치고 받은 영수증을 챙겨, 조금 떨어진 기계 세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세차기 안에 차를 들여보내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거대한 브러시들이 윙윙거리며 차를 감싸고, 거품과 물줄기가 쉴 새 없이 차창을 때립니다. 거친 굉음 속에 갇혀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은 차분해졌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나의 허물을 대신 닦아주는 듯한 느낌. 비록 나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지만, 세차기를 빠져나왔을 때 깨끗해진 차를 보면 내 마음의 묵은 때까지 씻겨 내려간 것처럼 상쾌했습니다.
문득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김상균 교수의 강연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효율성과 최적화는 AI(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효용성을 따지지 않는 '삽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제가 경험한 퇴근길은 이 강연의 훌륭한 축소판이었습니다. 셀프 주유와 기계 세차는 인건비를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최적화'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에 셀프 주유소를 이용하기 위해 겪었던 서툴고 두려웠던 과정들은 어쩌면 김 교수가 말한 '삽질'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효용성을 따졌다면 그냥 직원이 있는 주유소를 찾아 헤맸겠지만, 스스로 부딪쳐 보는 '삽질'의 과정을 통해 저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익혔습니다.
세상은 앞으로도 더 빠르게, 더 기계 중심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세차장 안에서 느꼈던 것처럼 가끔은 기계가 주는 효율성에 몸을 맡기고 온전히 휴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최적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서툴고 무모해 보이는 시도(삽질)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서툰 시도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고, 기계가 줄 수 없는 삶의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기름값 걱정과 세차의 상쾌함, 그리고 아침 강연의 여운이 뒤섞인 퇴근길은 저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최적화는 기계에, 삽질은 인간에게.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잊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나다운 모습으로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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