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야심 사이: 침묵과 외침의 갈림길에서

by Sunny Sea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 아직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의 공기가 참 상쾌합니다.


오늘은 제가 속한 제3여전도회의 찬양 특송이 있는 날이었어요.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를 부르는데, 사실 새벽이라 목소리가 잘 나올지 걱정도 되었죠. 다행히 개회 찬송에 고음이 섞여 있어서 목을 푸는 셈 치고 열심히 불렀더니, 특송 때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마음을 다해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목사님께서는 요한복음 19장 말씀을 통해 빌라도 총독의 재판에 대해 설교해 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충성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고자 하는 '야심'도 컸지요. 결국 그는 양심을 저버리고 야심을 택해 인류 역사상 가장 잘못된 재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숙연해졌던 것은, 그 억울하고 잘못된 재판조차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으며,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사적 계획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재판과 조롱, 침뱉음 속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못 박는 무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뒷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쳤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때는 침묵하셨을까?' 예전에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을 보시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며 상을 엎으시고 크게 진노하셨던 그 당당한 외침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끝에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침묵과 분노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실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이셨지만,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거대한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억울함을 뒤로하고 기꺼이 침묵의 고난을 감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무조건적인 침묵이 미덕은 아닐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나 억울함 때문이라면 때로는 인내하며 침묵할 줄 알아야겠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고 그분의 뜻이 가려지는 일에는 빌라도처럼 야심에 눈멀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오늘 새벽, 양심과 야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빌라도를 보며 저의 모습도 되돌아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내 안의 작은 야심들은 잠재우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침묵하며,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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