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위의 첫 생일, 장모의 첫 마음

by Sunny Sea

이제 겨우 결혼 3주차, 그런데 벌써 사위의 첫 생일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 하지 않은가. 장모라는 이름이 아직은 낯설고 서툴지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사위의 생일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맏며느리로서 30년 동안 명절 때마다 가족들을 위해 갈비를 재 온 경험이 있어 갈비 재기에 관한 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도 사위가 갈비를 좋아한다고 한다. 여건만 된다면 나의 주특기인 LA숯불갈비로 대접하면 좋으련만 사정상 갈비찜으로 주메뉴를 정했다. 명절 때마다 가족들에게 인정 받은 솜씨라 부담감은 훨씬 덜 했지만 그래도 새 식구인지라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았다.


퇴근 후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자정을 넘겨 새벽 두 시. 갈비의 핏물을 빼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리고 양념을 만들어 재는 데도 시간이 꽤 소요됐다. 한우 양지머리를 듬뿍 넣어 끓인 미역국, 자반고등어 구이, 그리고 몇 가지 반찬들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갈비는 양념이 배기를 기다려야 해서 자고 일어나 출근 바로 직전에 압력솥에 넣어 익혔다. 편하게 데워먹기만 하면 되도록 해서 가져가는 게 목표였다. 미역국과 갈비찜이 내 입맛에는 딱 맞는데, 사위의 입맛에도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위 생일이 방학식 다음 날이라 방학식이 끝나는대로 조퇴를 받고 집으로 가서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호텔 뷔페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준비한 음식을 전해주려 했다. 하지만 하필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야 하는 일직이라 숙직 전담 어르신과 교대할 때까지 학교에서 당직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일직 전날 퇴근 무렵에서야 깨달았다. 방학식 날이라 다들 일찍 귀가할 텐데 당직을 바꿔달라고 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편이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챙겨서 학교에 있는 나를 픽업해주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얼른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갑저기 뜬금없이 책장에 꽂힌 줄리아 카메론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 창조성과 의미를 발견하기'라는 부제가 마치 너를 위해 쓴 것이니 읽어보라고 말하는것만 같았다. 이미 이틀 전에 서론에 나온 창조성 회복을 위한 기본 도구 파트를 읽었는데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얼마간 실천해 본 후라서인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얼떨결에 버킷리스트였던 첫 개인 저서를 《아티스트 웨이, 우리 함께》라는 제목의 전자책으로 며칠 전에 출간하고 나서부터는 이 책이 내 인생 끝까지 함께할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갑자기 각별한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안으로 1주 차 '경이감 되살리기' 파트까지 읽기 완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음날 아니 오늘의 일정을 생각하며 아쉽게 책을 펼쳤다가 이내 덮았다.


​사위의 첫 생일상을 준비하면서 장모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이 순간이, 비록 피곤하고 바쁘지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나는 내 딸의 새 가족을 위한 첫 번째 생일상을 준비하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음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키워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더 해줄 것 없다며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나가는 딸이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럽다. 이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기를 바란다. 몸과 달리 또렷한 정신 때문에 말똥말똥 떠지는 눈을 눈꺼플로 억지로 꽉 눌러 덮고 잠을 청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