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키가 중요한 건 아닌 걸 알지만
우리 아이는 현재 키가 1%. 또래 100명 중 1번으로 작다. 3%로 이내는 성장 호르몬 부족 진단으로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현재 상황을 말하자면 결국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기로 결정하였고, 매일 집에서 펜형 주사기를 이용해 우리가 직접 주사해준다. 그리고 한 달 경과, 집에 붙여둔 키재기 스티커가 몇 개월 만에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새에 1cm정도 큰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이의 병명은 '근이영양증'. 그냥 작은 아이라면 이 선택의 무게가 그리 무겁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선택을 할 때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일단 보통 듀센형 근이영양증의 아이들은 3~4살 때 증상이 발현하여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야 한다. 스테로이드제는 많은 부작용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키가 크지 않고, 몸이 붓는다는 것이다. 붓기인지 살인지 알 수 없지만 몸무게가 증가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아직 증상이 없어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고 있지 않다. 단순히 성장이 더뎌서 현재 평균키지만 늦게 키가 큰 아이 아빠와 어릴 땐 또래보다 컸지만 성장이 일찍 멈춰 평균키보다 작은 나, 둘 중 누군가의 유전적인 원인으로 키가 작을 것이다. 내 생각엔 키가 늦게 큰 남편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신랑은 그 정도로 작지는 않았다며 이 사실을 부인한다. 어쨌거나 나중에 약을 먹게 되면 안그래도 성장이 더딘 아이가 나중에는 또래보다 한참 작을 것이라는 사실이 늘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성장주사를 맞히는 것도 걱정이다. 나는 아이의 병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혹시 마르고 작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몸이 가벼우니 근육양이 부족하고 힘이 떨어져도 몸을 지탱하는데 힘이 덜 드니까 좀 더 잘 견디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근육이 점점 없어지면 생기는 문제점들에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이 부족해지면서 척추측만이 생기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심장 근육이 약해져 호흡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 있다. 그런데 억지로 키를 키우다가 괜히 병을 빠르게 진행시키거나 갑자기 키가 커서 허리가 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인생을 결정해야하는 선택의 순간이 수도 없이 많지만 하물며 아이와 관련된 선택을 하자니 그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인생이란 지금 좋은 것이 평생 좋은 것이 아니기에 당장 키가 크는 기쁨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교수님은 지금 아이의 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가 최대한 오래 걷고 수명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아이에게 친구와의 관계나 자존감에서 키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첫번째 단서이다. 게다가 직관적인 어린이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일단은 검사나 해봐야지 생각했다. 근이영양증의 주된 담당과는 신경과이다. 그리고 신경과에서 재활의학과 등 타과와 연계하여 진료를 본다. 신경과와 재활의학과 진료가 있는 날 아침부터 키와 관련된 상담을 하리라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신경과 진료를 보고 재활의학과에 가서야 기억이 났다. 6개월마다 보는 진료인데다 아마 대학병원이다보니 성장관련 과와 연결해주고 검사하고 하다보면 수개월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는 것은 뻔히 보인다. 그래서 재활의학과에 진료를 가서 키와 관련된 상담을 하였다. 당연히 신경과에서는 어떻게 말했는지 물어보았는데, 내가 깜빡해서 상담을 못했다고 말했다.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우선 내분비과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몇개월 뒤에 진료를 보았고 진료를 보고나서야 검사 일정을 잡아주었다. 몇 가지 검사를 했는데 그러고 나서 입원 검사를 한 차례 더 진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질환과 관련하여 염려되는 부분을 말했는데 현재 키가 너무 작고 뼈사진으로 보았을 때 뼈나이가 2살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무조건 맞혀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또 몇 개월 뒤, 입원해서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할 때는 약물을 주입하고 일정 시간동안 금식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마다 체혈을 해야한다. 아이가 점점 힘이 빠지고 구토를 하기도 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꽤나 마음 아팠다. 1박 2일의 검사를 하고 1개월 정도 뒤 검사 결과를 듣고 성장호르몬 처방이 내려진다. 대략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지 마침 신경과 진료 시기와 비슷해졌다. 그제서야 성장호르몬 검사를 했다고 신경과 교수님께 말씀 드렸다. 어쨌든 담당의와의 상의 없이 검사를 했으니 왠지 모르게 나도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 교수님도 기분이 나쁘신 것 같았다. 그래서 깜빡해서 상담을 못 드렸다고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 물어보았다. 이미 내가 말 하기 전에 교수님은 아이의 검사 진행 사실을 차트를 통해 알고 계신듯 했다. 그리고 보통의 근이영양증 환자에게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권하지 않지만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다면 맞아도 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도 담당 교수와 이야기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왠지 모르게 힘이 나기도 했다.
여전히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후회하게 되진 않을까, 아이가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아이가 키도 쑥쑥 크고 병이 발현하여 진행되기 전에 임상연구가 성공하고 우리 나라에 합리적이진 않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으로 약이 들어와서 아이가 조금 약할 지라도 오래도록 걸으며 세상을 보고 긍정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