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살짝 베인 손가락이 더 아픈 것처럼 지나가듯이 던지는 말이 더 마음에 콕 박힌다. 마음이 급해 서두르다가 손이 베이면 괜스레 더 짜증이 올라오는 것처럼 무심코 하는 말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짜증이 나곤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을 한다. 화장을 왜 안 하냐느니, 살이 쪘다느니, 보기보다 상체보다 하체가 더 두껍다느니 쉽게 말을 한다. 그런 말들에 기분이 상해버리면서도 화를 내기도 뭐 할 만큼 정말 작은 것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참 좋아한다. 내 얼굴이 좋고, 내 체형은 허벅지가 튼실하고 오리궁뎅이지만 허리가 날씬하고 배에 살이 잘 찌지 않는다. 물론 드러내기 어려운 부위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남이 몰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꽤 인상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내 단점을 찾아내 떠드는 사람의 말에 상처받고 의기소침하곤 했는데 내 성격을 알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보니 나는 내가 꽤 맘에 든다. 나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기분은 나쁘다. 조금 더 화끈하게 니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하냐, 너나 잘해라 한 마디 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성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전보다 마음이 편안하다. 심지어 상대방이 나한테 모진 말을 해서 괜히 나도 내 나름의 반격을 해 본 적도 있지만, 괜히 내 마음만 무겁고 불편해 도리어 미안한 감정까지 느끼는 것을 보니 그냥 난 이런 사람이구나, 남에게 질러버리고 나서도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은 나도 의도치 않게 남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또 그러고 나면 밤에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상대방이 느끼기에 기분 나빴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리저리 건넬 말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지만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하기가 망설여진다. 아쉬운 점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알아가고 친밀해지는 것인데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마음이 잘 맞을지도 모르는데 그럴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는 것이 꽤나 아쉽다.
어릴 때는 외향적인 성향이 더 높았던 것 같은데, 그 때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피곤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나는 원래부터 내향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마도 나에 대해서 잘 모를 때부터 내향적인 사람이었나보다. 그 땐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도 몰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기도 했는데, 이제는 알차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나는 일명 워킹맘이라, 집에서도 온전한 쉼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없어 직장에서 최대한 충전을 하고자 한다. 특히 점심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날씨가 좋으면 혼자서 산책을 하고 하늘 사진을 찍고 때로는 일찍 사무실로 들어와 책을 읽기도 한다. 더러는 나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한 때이다. 점심식사 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의 시간이 너무 좋아 괜찮다.
나는 타 기관에서 현 기관으로 이직해 왔다. 기관 간 인적 교류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나는 아직 이방인이다. 그래서 이 곳으로 오기 전부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지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서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활발하게 행동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요즘은 인간 관계에서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마 내가 나에 대해 몰랐다면 섞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아주 괜찮다. 물론 동료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한다. 단지 그 빈도수가 굉장히 드물어야 나의 사회적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만남은 나를 방전시키고 만다. 나에게 맞는 사회적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이 내가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주변에 나와 같은 이를 본다면 불쌍히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마음 속에서는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