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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Jan 20. 2023

디어 마이 프렌즈

인생에 대하여

 한 번 본 드라마나 책은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디어 마이 프렌즈'는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던 드라마라 종종 생각나곤 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시 보는 대신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은 역시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머릿속으로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이 떠오르고 캐릭터들의 얼굴이 쏙쏙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잘 써진 대본과 훌륭한 연기력이 만나니 시간이 지났는데도 책 속의 장면들이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는 늙은이들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서도, 그 무리에 속하기도 하는 엄마 '난희'의 딸, '완'이다. 그녀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따금씩 귀찮고, 이따금씩 집착하는 엄마에게 답답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우리나라 여느 엄마와 딸의 모습과 닮아있다. 우리 집은 조금 반대였다. 엄마는 나를 어린 시절부터 귀찮아하였고, 늘 섭섭해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물론 아이를 낳아보니 그 귀찮음이 조금은 이해가기도 한다). 하지만 끝없는 엄마의 내리사랑만은 내가 이길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을 뿐 엄마에게 사랑을 주진 못했는데, 엄마는 지긋지긋한 딸년에게 언제나 끝없는 사랑을 주려고 한다. 드라마, 소설 속 엄마 '난희'도 항상 아픈 삼촌을 보며 장애인을 절대 만나선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딸의 행복을 빌어주며 '완'이의 연인 '연하'를 만나기 위한 슬로베니아행 비행기표까지 끊어준다.



'디어마이프렌즈'속에는 다양한 부모의 모습이 나온다. 집에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석균' 아저씨는 너무나 익숙한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석균' 아저씨의 부인 '정아'이모 또한 가정에서 희생하며 늙어서도 가족들을 보살펴야 하는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지만 결국 치매에 걸려 홀로서기를 실행하지 못하는 '희자' 이모는 겉으로 보기엔 곱고 여려서 고생 한 번 한 적 없어 보이지만 젊은 시절 어린 아가를 등에 업은 채로 떠나보낸 슬픔이 있다. 일가친척을 건사하느라 학업도 포기한 '충남'이모는 대학교에 가겠다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고, 화려한 여배우 '영원'이모는 모두의 다리 같은 존재로 여러 갈등을 해결하고 있지만 본인도 암으로 온몸 구석구석이 성한 곳이 없다.



 어디서나 있음직한 각자의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어린 시절에 보기에 노인들의 모습은 천천히, 아니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는 미래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종종 나는 늙기 싫어, 30대가 되기 전에 죽는 게 좋을 것 같아, 라며 어른들이 보기에 기가 찰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울먹이며 늙지 말고, 죽지 말라고 말해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했던 그 말을 나의 아들에게 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일이다. 내가 늙어가는 것도, 나의 부모가 늙어가는 것도, 왠지 모르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늙어가는 것을 깨달을 때는 어딘가 씁쓸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늙다, 젊다는 보기에 같은 형태의 반대말처럼 보이지만 늙다는 진행형이 가능한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이다. 젊음은 어딘가 머물러 있는 한 점의 모습을 표현하는 반면, 늙는다는 것은 진행형이며 계속해서 늙을 것이란 말이다. 늙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더 늙은 사람과 덜 늙은 사람이 있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모두가 늙은이지만 더 늙은이가 보기에 덜 늙은이는 아직 팔팔해 보인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늙는 것은 상대적이라,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며, 지금을 충분히 만끽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늙은이들에게도 사랑과 우정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아직 젊은 시절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한데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사랑 앞에서는 쑥스럽고 이상하면서도 젊은 시절처럼 설레는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다시 만난 사랑 앞에서 남사스럽다며 밀어내려고 하지만 어쩌면 이어졌을 지도 그 인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오래된 사랑이 너무 익숙해 모르고 있었지만 새삼 잃고 나니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늙으나 젊으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사랑이 존재한다. 또 우정과 의리는 더 끈끈해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일 어떻게 될 줄 모르니 오늘을 생각하자고 하며 농담을 던지지만 여전히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이 두렵다. 죽어야지 하지만 살아야지 하고, 늙어서 뭐 하냐고 하지만 또 늙었으니 즐기자 한다. 서로가 있기에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며, 나이가 들어도 부모 앞에서는 아기가 된다. 주고도 부족해서 항상 마음이 쓰린 부모와 받고도 받은 줄 모르고 결핍된 자녀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고 부모와 자식의 화해는 누군가가 아프고 나서야 가능해진다.




나의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겠냐. 맘에 안 들어도 자식이 받아들이고 자식이 바뀌어야지." 하지만 늙어도 변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드라마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팽팽하게 대립하던 엄마와 나의 다툼은 이제 엄마의 물러남으로 조금은 끝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어린 시절의 섭섭함들을 계속 끄집어내던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내가 몰랐는데, 너한테 잘못했던 것들이 많다"하고. 그리고 진짜로 엄마는 변했다. 우리의 팽팽하던 대립도 조금은 잦아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엄마가 왜 변했을까, 엄마가 건강해야 할 텐데.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들 하니, 괜히 이상한 걱정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몇 십년동안 나를 힘들게 하던 엄마에게 느낌 감정들이 한 번에 해소되었다. 종종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에서 속상했던 옛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고, 도저히 잊히지 않을 것 같아 괴롭던 그 기억들이 정말 일 순간에 사라졌다. 핏줄이란 것이 그런가 보다.



'완'이의 할머니 '오쌍분' 여사는 말한다. 인생 별 거 없다고. 그렇다. 인생은 별 거 없다. 등장인물들에게는 저마다 젊은 시절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이 늙어서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늙으면 무뎌질 것 같던 이별이나 아픔도 무뎌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갈등하고 아파하면서도 그래도 일상을 살아가며 끝이 나는 드라마, 소설 속 이야기처럼 인생 별 거 없이 살아갈 것이다.



해피엔딩이나 열린 결말이 아니라 그냥 주인공들은 그들의 인생을 연속해서 살아나간다. 우리의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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