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을 앞두고
도서관을 방문했다. 찾던 책이 없어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없어 주변을 배회하던 중 일본여행을 앞두고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가 내가 찾는 책이 있어야 할 자리 옆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유명한 소설가의 유명한 소설이지만 어떤 내용인지조차 정보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집어들고 바로 대여했다. 내가 찾던 책은 다행히도 신작코너에 있어서 함께 빌릴 수 있었다.
나는 책이나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지 모르는 매체는 피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전혀 내용을 알지 못했다. 무엇이든 정보가 없는 채로 접했을 때 더 재미를 느끼는 편인 것 같다. 아마 확신의 P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젊은 두 청년과 그들이 만나는 연상의 유부녀와의 사랑 이야기다. 아마 내용을 알았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을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목적에는 부합하였다. 일본여행을 준비하며 구글 지도를 통해서 도쿄 지리에 대해 꽤 익숙해진 상태라, 책 속에서 실제 도쿄 지명이 나오면 그 지역의 특색이 떠오르고 내가 걸을 거리를 머릿 속으로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토오루의 집에서는 도쿄타워가 보인다. 작가는 어릴 적 친척 어른의 집에 방문했을 때 도쿄타워가 보이는 그 집에서의 기억이 좋았고 도쿄타워가 보이는 지역을 배경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왜 그 소재가 불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재와는 상관없이 확실히 도쿄타워가 보이는 집에서의 풍경이 머릿 속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거닐던 시부야, 롯본기, 긴자, 기치조지의 길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기치조지를 지나가는 전철 추오우선(중앙선)에 함께 몸을 실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만났던 곳들을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평을 하자면,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내가 읽은 책은 리커버 되기 전의 그림이 없는 초록색 표지의 책이었는데, 최근 리커버한 그림을 보면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 두 남녀가 있는 그림의 표지로 바뀌었다. 실제 소설 속의 장면인데, 저 장면이 나오는 부분을 읽다가 나는 헉, 호, 후 하면 읽었다. 두 사람은 20살 청년 '토오루'와 토오루 엄마의 친구 '시후미'이다. 엄마의 친구인데다, 유부녀이다. 아마도 토오루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와 함께 할 방법을 궁리하고 결국 소설의 끝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 둘의 관계를 그녀의 남편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둘은 비지니스 부부 같은 걸까, 싶을 정도로 토오루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토오루와 시후미는 은밀하고 짧은 만남을 해왔었는데 여름휴가로 시후미의 시어미니가 물려주신 집인 별장으로 여행을 간다. 그녀의 남편은 나중에 별장으로 따로 오기로 되어있었고, 남편이 오기 전에 둘은 행복한 데이트를 즐긴다. 함께 주변을 산책하고 자전거도 타보고, 집에서 함께 씻고 옷을 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그 둘의 몇 안되는 공통점 중에 하나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고, 둘은 책에 대한 대화를 종종하곤 했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그녀의 남편이 예정보다 일찍 별장으로 온다. 시후미가 임기응변으로 대처를 하긴 했지만 누가 보아도 불륜의 현장인 듯한 침실의 모습을 보고도 남편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손님이 왔었다고 둘러댔지만 그 손님이 누군인지조차 묻지 않는다. 분명 그 둘은 비지니스 부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토오루의 친구 '코우지'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 역시 유부녀를 만나고 있는데 또래의 여자친구도 한 명 더 있다. 아주 여자문제가 복잡한 청년이다. 아마도 토오루는 꽤 오랫 동안 시후미와의 만남을 지속하다가 언젠가는 이별을 할 것이고, 코우지는……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연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륜에 양다리에. 아주 문제가 많다.
다른 후기를 읽어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불완전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토오루의 사랑도 결국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았지만 완전하게 이룰 수는 없는 사랑이다. 시후미는 안정적인 인생을 바라고 혼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의 남편과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보통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등장인물의 현재 행동에는 과거에 이유가 있다. 하지만 「도쿄타워」에서는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내면이나 주변 상황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단지 현재 그들의 사랑이야기만이 나온다. 그래서 왜 결혼을 하고서도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지, 왜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딘가 심리적인 결핍인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들의 불륜에는 과거에 이유가 없다. 단지 하나의 사랑으로 보이기 위함이었을까.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그들에 대한 비난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들이 거닐던 도쿄 거리에 지나가는 모르는 커플 정도로 느껴진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왠지 지금도 도쿄의 거리를 걷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