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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Apr 05. 2023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

(장애인복지 과제)

 어릴 때부터 사회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무런 행동도 실천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 나의 삶을 풍족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모의 걱정을 탓하며, 행동하지 못했다. 여전히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단지 내가 자발적으로 방송통신대학교를 통해 사회복지 관련 수업을 선택하여 듣는 것으로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학기에 장애인 복지 수업을 신청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 내가 사는 곳과 다소 거리가 있는 포항으로 향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면서 장애인 복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수업에 스며들며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점을 바꾸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짐을 느꼈다.


 유명한 복지국가들이 몇몇 있지만, 그런 세상은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세히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다큐를 통해 몇 가지 사례들을 보니, 참 아름다운 사회라고 생각했다. 신체의 불편이 그들의 삶에서 장애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회가 주는 당연한 권리들과 이를 위해서 힘쓰는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당연히 여길 수 있도록 바라보는 차별 없는 주변 시선들. 모든 것들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나의 자녀는 신경, 근육관련 희귀질환자이다. 아직은 어려서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장애인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아마도 신청을 해야 할 것이다. 산정특례대상자로 지정받아 질환과 관련된 병원 진료비는 상당 금액을 지원받고 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어 발달관련 치료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으며, 이번에 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유수강비를 신청해두어 필요한 교육비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수중운동에 자유수강비를 사용할 계획이다.


 이러한 신청 과정에서는 부모의 눈물이 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산정특례같은 경우는 처음 병을 진단 받을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병원에서 알아서 등록해주어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도 시행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병원에서도 알아서 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외의 모든 신청은 내가 알아서 알아보고 신청해야 한다. 그리고 불편이 있다고 하여도 신청 과정에서 무조건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조건에 부합해야 인정해준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 하나의 산이 존재해 이를 헤쳐나가야만 하는 사회이다. 학교에 보내면 아이를 1:1로 케어해줄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전문적으로 케어해줄 수 있는 전문가도 없다. 단지 아이의 생활에 도움을 줄 실무원과 학교에서 신청해서 배정받는 공익복무요원이 전부다. 그리고 이마저도 부족해서 배정받지 못하는 학교도 있다.


그러면 기관에서는 어떨까? 공공기관, 복지관, 국민연금공단(장애 심사) 등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조금만 안 맞아서 지원을 못 받아도 득달같이 화를 낸다고 비난한다. 나는 사실 이 두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공무원이자, 아픈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생각보다는 참 열심히 일하고, 자기 일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 모른다. 일 안하는 공무원은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무언가 요구하는 민원인에게 하나라도 도움을 주고자 책을 뒤지고 법령을 찾아보고 동료들과 상의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보통의 눈에는 자기 일 하나 숙지못하고 책을 뒤지며 허둥지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또한 시스템의 문제이다. 복지분야는 매년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져나온다. 이러한 정책들은 차곡차곡 정리가 되기도 전에 또 쌓여간다. 그런데 복지공무원은 2년마다(기관마다 다르지만) 순환하며 자리를 옮겨야 한다. 현실적으로 민원인이 알고있는 지원 정책을 숙지하고 있지 못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다, 우리들의 마음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사실 나는 복지 공무원은 아니다보니 내부에서 제3자로서 지켜본 모습이라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는 장애인 등록자체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등록할 필요가 없이 사회가 이들의 어려움을 돌봐주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하여 인터넷을 뒤져보고, 비슷한 질환의 부모 모임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힘써야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는 사회가 알아서 한 개인이 가진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개인에 맞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등록이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보다. 다큐에서 나온 아이는 사고로 몸이 마비가 되었는데, 국가에서 휠체어 이용이 편리하게 설계된 집을 제공하고, 가정 생활, 학교 생활, 재활운동 등 각 분야별 활동보조인이 있어 무려 5명의 인력이 한 아이를 돕고 있으며, 부모는 직장생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도입하려고 한다는데, 위의 내용과 비슷한 지원 방식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정말 개인의 필요를 적절하게 반영하여 잘 지원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선 개인에게 필요한 복지제도를 계획적으로 설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충분한 예산이 필요할텐데, 이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완벽한 실패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가 새로운 복지 제도를 늘 고민하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미래에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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