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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사이드업 Aug 21. 2019

02. 비오는 날의 커피셔틀

어쩌다 프리랜서가

 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빗물이 스미지 않을 적당한 신발을 고르는게 성가시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동네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주말엔 좀처럼 나가지 않았는데, 이런 날엔 꽤 한적하기 때문이다. 우산을 쓰고 느릿느릿 카페까지 걸어가 여유롭게 책도 보고, 글도 조금 쓴다. 반쯤 접어두는 주말이건만 잠깐이나마 작업 할 수 있어 좋다. 


 회사원이었을 때는 주말에 내리는 비가 억울했다. 금쪽같은 주말 아침, 힙하다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 때리며 광합성하는 낙으로 빌어먹을 월화수목금요일을 버티는데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간만에 신은 힐에 흙탕물이 튈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택시는 안 잡힌다. ‘그런 날엔 그냥 집에서 쉬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밀도있는 쉼’. 반복되는 주말 근무와 야근으로 일주일 중 온전히 쉴 수있는 날이라곤 하루, 여기에 더 해봤자 반나절 남짓이었기에, 절전모드에 빠진 배터리를 단시간에 100%로 충전시키려면 그야말로 ‘빡세게’ 놀아야 했다.




 주말만 괴로웠던게 아니다. 비오는 날 커피를 사러 나온 직장인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구나 입사 초기엔 각종 잡일에 치이지만, 내가 있던 팀은 유독 간식 심부름이 많았다. 비오는 날엔 우산 받칠 손이 없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커피 셔틀을 했다. 비에 젖은 캐리어를 보고도 니껀 캬라멜마키아또냐 내껀 어쩌구푸치노다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몫을 꺼내가는 팀장님과 선배들을 볼때면 면전에다 대고 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이제와 되짚어 보니 어린이가 아니라 몰랐던 걸까 싶지만…


  선배 한명은 회사에서 경험하는 모든 고통에 대한 대가가 월급에 녹아들어 있으니 그러려니 하라 했다. 앞에서는 ‘역시 그런건가요’라며 끄덕였지만 속으론 고개를 저었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행사와 잡일들, 특히 ’가족같은 팀 분위기’를 위한 모든 강압적 노력이 싫었다. 직급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고민이었지만, 이마저도 싫었다. 비에 젖은 막내를 보고도 녹아버린 얼음에 밍밍해진 커피 맛만 아쉬운,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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