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군사반란세력의 국민 호감 끌기 작전

by 써니사이드업

1980년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총칼로 권력을 잡았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거치지 않은 정권은 출발부터 정당성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광주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진압은 민심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신군부는 국민의 분노를 달래고 정권 이미지를 부드럽게 보이게 하려는 여러 ‘호감 조치’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문화, 복지,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이 정책들은 의도는 정치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제도도 많습니다.

국풍81 봉산탈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대표적인 사례는 1981년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전통문화 축제 ‘국풍 81’이었어요. 학생운동이 거세던 시기였기에, 정권은 ‘민족’과 ‘전통’을 내세워 저항의 흐름을 희석하려 했던 겁니다. 민속놀이, 국악, 전통복식 행렬 같은 행사는 언론을 통해 ‘민족 자긍심 고취’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고, 무속신앙도 이 시기 일부 복권되는 분위기를 띠었습니다. 김금화 같은 무당이 해외 공연에 동행하며 “전통을 존중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죠. 그러나 이는 문화의 진정한 복원이라기보다 철저히 정치적 도구로서 활용된 것이었습니다. (국풍 81에서 유명해진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잊혀진 계절」을 부른 가수 이용이고, 다른 하나는 충무김밥이다. 통영에 있는 충무할매김밥의 어두이 할머니(당시 63세)가 통영에서 올라와 충무김밥을 선보이면서 서울에 알려지게 되었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국민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준 조치들도 있었습니다. 1982년에 36년 동안 이어지던 야간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되었어요. 시민들은 비로소 깊은 밤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게 되었죠. 이는 곧 다가올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자유로운 선진국’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계산된 움직임이기도 했습니다.


복지 정책 중에서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눈에 띕니다. 1982년에 70세 이상 50% 할인으로 시작해서, 1984년부터는 65세 이상 무임 혜택으로 확대되었어요. 지금도 이어지는 대표적 제도이죠. 당시에는 노년층의 삶을 바꿔주었지만, 동시에 ‘저항 가능성이 적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 중·고등학교 교복 자율화도 시행되었습니다. 1983년 정부는 “학생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교복 착용 의무를 폐지했죠. 학생들은 자유롭게 옷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되었고, 교복 규제가 사라진 교정에는 이전보다 훨씬 밝고 다양한 색상의 옷차림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자율화 조치’로 적극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젊은 세대의 불만과 저항 의식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컸습니다. 학생운동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권은 ‘자율화’라는 포장을 씌워 긴장을 누그러뜨리려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교복자율화는 1986년에 각 학교마다 교복 착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교복자율화 이후 중고생을 위한 옷 브랜드가 많이 출시되었다. 삼성물산 에스에스패션의 '챌린저'와 '뻬뻬로네'. 최수종과 손창민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또 하나 주목할 조치는 과외 전면 금지였습니다. 교육 평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음성 과외를 확산시키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학부모들의 불만이 컸음에도, 정부는 이를 “공정한 사회를 위한 개혁”으로 홍보했지요. 정권 스스로를 개혁 세력처럼 포장하는 수단이었던 거예요.


설날이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되고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흥미로운 변화로는 ‘설날의 부활’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지요. 이름은 다소 모호했지만,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명절을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국민 정서에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주려는 계산과 동시에, 생활 속 정서를 정치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바로 3S 정책이었습니다. Sports, Sex, Screen의 머리글자를 딴 이 정책은, 국민의 관심을 정치 대신 오락과 대중문화로 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지요. 1980년에 칼라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면서 거실은 처음으로 화려한 색채의 영상으로 채워졌습니다. 컬러 화면 속 스포츠 경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은 현실의 긴장감을 잊게 만드는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지요.

컬러TV는 1974년 부터 한국에서 생산되었지만 정권의 반대로 수출만 하였다. 1980년에 아시아에서 한국, 라오스, 네팔만이 흑백 방송을 하고 있었다. (출처: KBS 홈페이지)

이듬해인 1982년에는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습니다. 경기장은 연일 사람들로 붐볐고, 팀 간 지역 라이벌전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시민들은 잠시나마 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잊고 승부의 열기에 몰입했습니다. 정권은 이러한 대중의 열광을 정치적 안전판으로 활용했지요. “정치 대신 스포츠, 저항 대신 오락”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진 겁니다.

CET0007849_프로야구개막식각팀선수모습2_1982년_국가기록원_공보처 홍보국.jpg 1982년 프로야구 출범 개막식에서의 선수단 입장. 삼미 슈퍼스타즈 피켓을 들고있는 여성의 원더우먼 복장이 눈에 띈다. (출처: 국가기록원 - 공보처 홍보국)

이처럼 신군부는 통금 해제, 설날 부활, 지하철 무임승차, 과외 금지, 그리고 칼라TV와 프로야구 출범 같은 정책들을 통해 국민 생활 곳곳에 ‘변화’를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유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주는 듯한 착각’을 심어주려는 계산이 숨어 있었어요. 민주주의를 억눌렀던 정권이 문화와 일상을 포장지로 삼아 국민의 눈과 귀를 돌렸던 셈이죠. 결국 이 ‘호감 끌기 작전’은 잠시 민심을 달랬지만, 억눌린 분노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다시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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