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64K D램에서 세계 1위까지

삼성의 반도체 승부수

by 써니사이드업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은 이병철 회장이 시대의 흐름과 국제 정세를 예리하게 감지하고 내린 전략적 결단이었습니다. 시작은 1970년대 후반에 삼성이 한국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반도체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반도체 조립과 패키징을 하청 받아 처리하는 곳이었어요.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유튜브 캡처)

그 무렵 미국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노동집약적인 부분을 일본, 대만,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인건비 절감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냉전의 한가운데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맹국의 산업 기반을 키우려는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이병철 회장은 곧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조립만 해도 이렇게 이익이 큰데,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판다면 어떨까?”

하지만 망설임도 있었어요. 과거 낮은 수준의 반도체 생산에 도전했다 실패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80년대 초에 미국과 일본의 무역 마찰에서 찾아왔습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가격을 낮추는 덤핑 전략으로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견제할 새로운 균형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요. 이병철 회장은 이 흐름을 정확히 읽어냈습니다.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는 HP Garage.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이곳에서 HP를 창업하였다. (출처: 네이버 이미지)

1982년에 그는 직접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습니다. HP가 창업했던 작은 차고를 보고는 “이 작은 차고에서 거대 기업이 시작되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죠. IBM 본사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습니다. 사진을 보고 따라올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도전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습니다.



64K DRAM 생산 성공 1983년 (출처: 삼성반도체 뉴스룸)

그리고 마침내 1983년 3월에 삼성은 반도체 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정부도 4억 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약속하며 총력 지원에 나섰죠. 같은 해에 삼성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서 전략적으로 구입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64K D램 생산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100% 독자 기술로 256K D램 개발에도 성공했습니다.



플라자 합의가 개최된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외부 환경도 삼성을 도왔습니다. 바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였어요.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고 일본 엔화를 인위적으로 올리기로 한 국제 협정이었죠. 그 결과 일본 경제가 흔들렸고, 수출로 버티던 일본 반도체 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여기에 1986년 미국과 일본이 추가 협정을 맺으면서, 일본은 미국에 반도체 수출을 자제하고 가격 덤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죠. 일본 기업이 뒷걸음질 치는 사이, 미국은 새로운 파트너를 필요로 했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한국, 그리고 삼성이었습니다.


또 다른 기회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급성장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메인프레임(Mainframe 아래 사진 참조)이라는 중대형 컴퓨터에 사용되는 고가 메모리에 집중할 때, 삼성은 개인용 컴퓨터에 들어가는 저가 메모리에 주력했지요. 1990년대에 들어 PC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성은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93년에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낸드플래시, 모바일 메모리, 파운드리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세계 반도체 산업의 리더로 자리 잡았죠.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끝내 세계 정상까지 올라선 한 기업의 도전이었어요. 그리고 그 도전은 오늘날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 불리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메인프레임 컴퓨터 (출처: Wikimedia Commons - Creative Commons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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