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980~90년대 한국의 인구 증가와 도시 정책

삼천리는 초만원

by 써니사이드업
1980년대 산아제한 포스터 (출처: 네이버 이미지)


1980~90년대는 한국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동시에 엄청난 인구 이동이 일어나던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지요. 더 많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서울이 있었죠.


서울의 인구는 1980년 약 840만 명에서 1990년 1,0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불과 10년 사이 2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죠. 수도권 전체로 보면 인구는 같은 기간 500만 명 가까이 늘어났어요. 도시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곳곳에서 긴장이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주택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주택난이었습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반지하 주택’이예요. 원래는 창고나 보일러실 용도로 쓰이던 지하 공간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주거 공간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1984년에는 제도적으로 합법화되었어요. 반지하는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막 서울로 올라온 대학생, 일용직 노동자, 신혼부부가 머물 수 있는 ‘도시 입문 공간’이 되었죠. 영화 <기생충> 속에 등장했던 풍경처럼, 반지하는 도시의 그늘진 현실을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분당 신도시 (출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정부는 주택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서울 인근에는 택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공공·민간 주택이 쏟아지듯 지어졌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갈 수 있었고, 주거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에만 인구가 몰리지 않도록 분당, 일산, 산본, 중동, 평촌 같은 ‘1기 신도시’도 조성되었습니다. 이 신도시들은 주거와 상업, 교육, 공공시설이 함께 들어선 자족형 도시로 기획되었고, 지금도 수도권 생활권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죠.

일산 신도시 (출처: Wikimedia Commons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3.0, Eungi731)

하지만 집만 많이 짓는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구가 늘면서 자동차도 급격히 늘어났고, 교통 혼잡은 일상이 되었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는 지하철 5~8호선 건설과 한강 다리 확장에 나섰습니다. 학교 문제도 심각했어요. 한 반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수업을 받는 일이 흔했고, 정부는 새 학교를 짓고 교사를 대거 충원하며 뒤처진 교육 환경을 따라잡으려 애썼습니다.


환경 문제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쓰레기와 하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수도권 매립지가 조성되고, 하수처리장이 확장되었으며, 분리수거 제도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도시 환경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죠.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앞장서서 환경 정비와 도시 관리를 추진했던 시기였어요.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습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이 제정되어 대학과 공공기관, 기업의 서울 진입이 제한되었고, 일부는 지방으로 이전을 권유받았습니다.

이처럼 1980~90년대는 한국 사회가 도시를 다시 설계하고, 국가의 틀을 새롭게 짜야했던 커다란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과 실험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구조와 풍경, 시스템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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