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로 시작된 한국 영화의 전성기
한때 한국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크린은 온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차지했고, 사람들은 화려한 외국 영화에 열광했죠. 반면 한국 영화는 촌스럽고 재미없다는 편견 속에 고개조차 들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어둡던 시절에도 한국 영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변화의 씨앗을 키워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 변화의 시작점에는 제도와 정책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크린 쿼터제예요. 일정 기간 동안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반드시 상영하도록 한 이 제도는, 흥행 성적과 관계없이 한국 영화가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안전망이었요. 물론 일부 극장에서는 저예산 영화들로 형식만 채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진지한 시도들이 관객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냈죠.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은 1996년 영화 사전심의제도의 폐지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정치적·도덕적 기준으로 제작 단계부터 내용이 통제되었고, 표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검열이 사라지자 창작자들은 훨씬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초록물고기’, ‘거짓말’, ‘처녀들의 저녁식사’, ‘오! 수정’ 같은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화들이었고, 이는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산업의 판도 역시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버블 시대’라 불리던 경제 호황 속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할리우드처럼 제작–배급–상영을 하나로 묶는 수직계열화 모델을 도입하려는 시도였죠. 첨단 기술과 자본이 유입되면서 산업의 틀이 조금씩 정비되었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대기업이 영화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직전, 삼성이 투자한 마지막 작품이 남게 되었죠. 바로 1999년 개봉작, ‘쉬리’였습니다.
‘쉬리’는 잘 만든 액션 영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영화가 처음으로 흥행, 완성도, 대중성, 기술력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당당히 맞서며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죠. 당시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깨고 1위에 올랐을 때, 관객들은 비로소 “이제 한국 영화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분단 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상업적으로 잘 풀어내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고 관객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와닿는 방식으로 표현했어요. 액션과 멜로, 정치적 긴장을 절묘하게 버무려내며 한국 영화의 서사가 전환점에 도달했음을 알린겁니다.
해외에서도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예술영화’가 아닌 ‘대중영화’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경험은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올드보이’로 이어지는 한국 영화 전성기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