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과 침묵 사이

한숨처럼 흘러간 위로의 온도

by 손린

퇴근길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나는
그저 아무 말도 하기 싫은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함께 걷게 된 동료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마음이 조용히 무너졌다.
누구나 건네는 위로의 말이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런 말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그런 말은 위로가 아니에요.”


순간 공기가 멎었다.
우리 사이에 말보다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나란히 걸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발소리만이 길 위에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말로 위로하려 애쓸 때보다,
아무 말 없이 함께 걸어주는 시간이
더 따뜻했었다는 걸.


때로는 말이 상처를 남기고,
침묵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의 말 없는 걸음내 안의 한숨을 덜어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위로는 문장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존재의 온도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문득 그때의 걸음을 떠올리면,
신용재의〈한숨〉이 귓가에 맴돈다.
“괜찮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가사처럼,
우리가 나눴던 침묵 속엔
이미 충분한 위로가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