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
전화기가 울렸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별 용건은 없었다. 자기 집에 건너와 함께 차를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즈음, 남편처럼 유학생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미국에 왔으니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때 아닌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늘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무엇을 하고 있던 게으른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든 간에 그녀의 전화는 늘 반가웠다.
Sue의 간소한 식탁은 늘 단정했다. 잠시 기다리니 예쁜 찻잔이 나왔다. 갓 내린 차를 따라주는 그녀는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치즈 케이크를 맛보며 케이크도 집에서 만들 수 있냐고 놀라는 나에게 쉽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웃었다. 많은 경우에는 나 말고도 손님이 많았다. 주로 같은 한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초대한 그녀가 우리 그룹의 리더였고, 결혼한지도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자주 모였다. 아니 그보다는 그녀의 베풂과 너그러움 덕에 그 집에서 자주 모였다는 것이 더 맞겠다. 그녀는 요리도 척척 잘했다. 일식집에서 나오는 것 같이 바삭한 튀김요리, 집에서 만든 간이 잘 맞는 알밥, 야들야들한 불고기, 모임 때마다 바뀌는 메뉴는 진심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녀가 요리 솜씨를 발휘하면, 나를 비롯한 초보 새댁 친구들은 감탄과 존경을 마지않았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주부의 길에서는 대단한 선배였다.
어떤 날엔가는 김밥말이 모임에 오라는 초대도 받았다. 이런 초대도 있나 싶었지만, 김밥을 한 번도 말아 본 적이 없다는 진솔한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후 그녀가 새댁 세 명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간소한 식탁에 둘러앉아 김밥을 말며 깔깔거렸다. 그 나이 되도록 김밥도 못 마냐는 타박 대신, 마음껏 새내기 티를 내며 반은 말고 반은 먹으며. 우리들의 외로운 오후가 채워졌다.
미국에서의 첫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였다. 나는 회사나 열심히 다녔지 여자치고 쇼핑에 대단히 취미가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왔으니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딱히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내게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하면, 큰 폭으로 세일하는 텔레비전이나 가전제품을 사려고 월마트 앞에서 밤새워 줄을 섰다가 새벽에 가게가 문을 열면 우르르 달려 들어가 사람들끼리 깔리고 사고 나고 했던 뉴스의 한 장면만 떠오를 뿐. 그러니 블랙 프라이데이라 해도 별 감흥 없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그날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정에 옆 도시에 있는 아웃렛(Outlet)이 문을 여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다. 쇼핑을 대단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정에 하는 쇼핑이라니!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더니! 뉴스에서 볼 때는 밤새워 쇼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이더니, 막상 누가 같이 가자고 하니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당장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동생과 언니 한 명이 듣더니 자기들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여자 넷이 밤 10시에 만나서 아웃렛으로 향했다. 그곳은 뉴욕의 우드버리 아웃렛 같이 크고 화려한 쇼핑몰이 아니다. 사실, 별 볼거리 없는 북부 뉴욕의 시골 근처에 있는 작은 아웃렛이었다. 그런데도 설레었다. 우리는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하고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한 시간 넘게 달려서 자정이 좀 못되어 아웃렛에 도착했다.
친구는 부드러웠지만 조직적이고 강단이 있는 편이었다. 각자 필요한 것들을 사고 새벽 3시에 다시 만나자 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쇼핑, 즉 방대하고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한꺼번에 커버해야 하는 쇼핑 경험이 없던 나는 어리둥절할 뿐. 결국 그녀에게 "무엇을 사야 할지" 물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말하자면 그녀를 따라다니며 사라고 권하는 것들을 사는 쇼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녀가 추천하는 6인용 미카사 아이스크림 그릇 세트를 샀다. 그리고 볶음 요리를 할 수 있는 웤과 커피를 끓일 용도로 산 2컵짜리 작은 손 냄비, 도시락통,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낼 가죽장갑, 양키 캔들 몇 병, 그리고 간단하게 들고 다닐 부담 없는 핸드백 하나를 샀다. 그러고 나니 새벽 세 시가 되었다. 쇼핑으로 밤을 새운 역사적인 날이었다. 비몽사몽, 바리바리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자고 있어서 조심하느라 살금살금 들어갔는데도 쇼핑 봉투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깼다. 쇼핑백 안을 들춰 본다. 내가 밤새워 쇼핑해서 사온 품목들을 보더니 실망한 눈치다. 밤새워 사온 것이 프라이팬, 냄비, 장갑, 양초들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긴 한데, 시골 아웃렛에서 건질 수 있는 쇼핑 품목은 쇼핑의 여왕이래도 별 수 없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내가 전화를 했다. 밤늦게 친구 집으로 찾아갔다. 1분만 걸어가면 서로의 집에 갈 수 있는 대학원 기숙사라 우리는 일 년간 그렇게 가볍게 오고 갔었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던 나는 미국에서 처음 만든 친구를 떠나보내려니 마음만 급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잠이 들어 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식탁 한 구석에 작은 등이 켜 있었고, 양초가 그녀의 단정한 식탁 위에서 흔들거렸다. 그녀가 내게 두고 떠난 말은, 이 곳에 남은 다른 친구들을 잘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잘할 수 있다며. 아마도 나처럼 낯선 미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그녀처럼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라는 뜻이었겠지. 아쉬운 인사를 전하고 일어서는 길이 스산했다. 낯선 땅, 낯선 문화 가운데서 무척이나 어설펐던 나를 따스하게 덮어준 사람. 좌충우돌 새댁 첫 해를 그렇게 조곤조곤 친절하고 재미있게 안내해 준 친구를 만났던 걸 생각하면 난 참 운도 좋지. 그녀가 떠난 후에도, 그녀의 친절함은 내 안에 한참동안 남아 있었다. 어쩌면, 친구가 되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내게 롤 모델이 되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한 가지 면에 있어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