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주는 위로.
가을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유 거품에 계피향이 덧대어진 커피가 손에 들려 있다. 커피 향을 맡고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부리에 물을 머금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병아리 마냥 커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한 번 바라본다. 잠시 그렇게 서 있자니 차갑고 바삭바삭한 기운이 빨간 스웨터의 얼기설기한 털실 사이를 뚫고 기어코 내 살갗을 만지고야 만다. 차가운 기운 덕에 아침 볕 아래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떠나는 차의 뒤꽁무니에 대고 손을 한참 흔들다가 그 모습이 사라지자 곧바로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바쁘고 무심한 아침의 뒷모습은 길다. 먹다 남긴 오트밀 그릇과 과일 껍질 등이 질서 없이 널려있다. 서둘러 버리고 씻고 닦기를 좀 하고 나니 그제야 정돈된 한 구석이 내게 마련된다.
그 사이 미적지근해진 커피를 다시 데우기로 한다. 에스프레소를 더 내릴까 하다가 손을 멈췄다. 친하게 지내는 분이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선물로 사다 준 커피빈이 얼마 안 남아 아까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뜨거운 물을 끓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주전자를 들고 잠시 펄펄 끓어오르는 물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뜨거운 물 주전자를 사나운 고양이 다루듯 빙글빙글 돌리니 끓는 물과 주전자 벽이 파락 파락 소리를 내며 요란하다. 요란한 소리가 가라앉을 때쯤, 식은 커피에 적당히 뜨거운 물을 붓고는 휘휘 젓는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의식 같은 시간이다. 커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 덕에 창에 작은 서리가 덮이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본다. 창문에 서리가 끼는 초겨울 아침마다 어린 손가락으로 수백 번을 그려 본 그림들. 그 창 그림 밖으로 보이던 누런 햇살.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아침볕은 빛깔만 봐도 어느 계절의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갑자기 낯선 나라에 가서 스무 시간도 넘게 자고 일어나 눈을 뜬다 해도 나는 그 볕이 가을의 것인지 여름의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만난 아침볕에는 누런 가을이 너그럽게 묻어 있다. 나는 유독 초가을에 만나는 이 가을 아침볕이 좋다. 봄 여름 간의 수고를 위로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열매를 숙성시키기 적당한 뜨거움,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라는 긴장감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여름 끝이라고는 하지만 늘 가을은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닮았다. 그래서 이제 추워지려나 싶어 웅크리려 하면 이때를 내내 기다려온 생명체들을 외면하지 않고 쑥쑥 익혀주는 호탕한 대지주 같은 볕. 초 가을만 되면 만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볕이 오늘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정오가 되면 볕의 색보다는 그 날의 온도에 따라 다시 여름 같기도 하고 가을 같기도 한 뜨거운 볕이 세상을 뒤덮지만 이 아침볕 만은 정직하다.
가을 아침볕을 만난 날에는 긴 카디건을 꺼내 입는다. 자칫 여름처럼 대했다간 감기를 모면하기 어렵다. 미처 정리 못한 여름옷을 정리하고 한 여름 내내 서랍에 넣어 두었던 두툼한 옷들을 꺼냈다. 가끔은 서둘러 여름옷들을 정리해 넣는 바람에 낭패일 때도 있지만 진한 황금의 아침볕이 들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 오면 난 가을이 왔다고 믿는다. 매일 아침 만나는 볕은 계절마다 다 다른데 이 두 가지가 같이 오면 어김없이 짧은 가을이 시작되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늘은 또 어떤가? 투명하도록 선명하고 포근한 구름은 덤이다. 이 하늘을 가진 날들이 오면 곧 온몸을 긴 옷으로 덮고도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들이 시작된다. 시장의 과일들이 바뀌고 집 앞에 즐비한 나무들의 잎 색깔이 바뀐다. 특유의 덤덤하고 회색끼가 돌던 녹색 잎들이 붉은 끼가 도는 밤색으로 바뀌는데 얼마 안가 집 앞 길을 우루르 덮어 버린다. 그리고 낙엽으로 덮인 길을 걷는 것은 이 동네에 이사 온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바삭거리는 낙엽들을 밟기 위해 앞마당 비질은 잠시 미루고, 여름 내 안 하던 산책도 시작된다. 모두 가을볕의 선물이다. 오늘 아침, 텅 빈 허공을 가득 채워 오는 햇볕처럼, 나도 텅 빈 오늘 하루를 채우러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