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찾아온 저녁

두려움이 빚어 준 소외

by 굳찌


Washington Monument, 2014

남편 학회 가는 길에 함께 하기로 했던 여행은

결국 사진으로 보는 것으로 멈추게 되었다.

그 당시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이

미국 동부로 들어와 세상이 시끄러웠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동부로 움직이는 것을

만류했기 때문에 가족 여행은 무산되었다.


한때는, 사스나 조류독감이 돈다고 해도

별 개의치 않았는데 엄마가 되니 완전 개의하게 되었다. 언제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의 계획이 헛되다던 성경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남편이 보내온 워싱턴 D.C의 사진들을 핸드폰 화면으로 본다. 사진은 어쩌면, 사진과 시공간을 같이 한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 초저녁 워싱턴 모뉴먼트의 모습은 사뭇 기억과 달랐다. 기억 속의 모뉴먼트는 강렬한 햇빛 아래라 꼭대기를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이 벌떼 같았는데. 그곳을 홀로 걷고 있는 남편이 보내온 오늘 사진은 저녁이라 그런지 조용해 보인다.

아니면 사진이라 소리가 없어 조용한 걸까?







Washington Street, 2014

여긴 한창 낮인데

저긴 해가 저문다.


나는 낮에 있는데

그는 저녁에 있고

누군가는 새벽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나는 지금 여기

당신은 저녁 어딘가

그들은 새벽 어딘가에 살고 있다.

문득 이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도 낯설다.


과학이 현상과 원리를 설명해 준다지만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 보아도

이다지도 선연히 다른 시공간에서 사람들이

각자 존재하며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은 가끔 내 존재와 섞이지 않고 겉도는 기름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여자들의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