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서의 안온한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11월이다.
내 시월은 어디로 갔을꼬?
남편이 출장을 다녀왔고...
사진과 전화로 함께한 나는
그의 조용한 아침과 호텔 커피가 단연 부러웠다.
장을 보러 나섰다. 가을이 완연하다.
선인장도 나무소쿠리에 소복이 담아 놓으니 이쁘다.
마트의 구석에는 꽃가게가 있다.
한국에서도 큰 마트에는 꽃가게가 있었던가?
가물가물하다.
밭에서 온 꽃이든, 비닐하우스에서 온 꽃이든 간에
고향은 다르지만 제각기 아름다운 모양이 한창이다.
오늘은 해바라기가 눈에 유독 띄인다.
그녀는 너무 크고 선명해서
한 번도 예쁘다 해 주지 않고 늘 촌스럽다 타박해 왔다.
그런데 올 가을에 다시 보니,
국화랑 같이 무척이나 운치가 난다.
오늘은 아무래도 꽃 한 다발 사야지 하고 들여다 본다.
들여다 보니, 그들이 저마다 가격표를 부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해졌다.
꽃 다발을 한참 들었다 놨다 한다.
아직도 무슨 날이여야만 꽃을 사는 나.
비싼 돈 주고 이란 선생님께 꽃꽂이 배운 걸 생각하면
더 친해져야 하는데...
이유없이 꽃사는 날은 여전히 드문 일이다.
성경공부모임 브런치도 있었다.
금빛 장식 접시가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멋진 호텔 음식보다, 친구들이 각자의 비밀레서피로
직접 만든 음식이 훨씬 더 좋다.
로지가 만들어 온 퀴쉐는 정성이 가득했다.
시금치, 버섯, 토마토를 잔뜩 썰어 넣었고
치즈와 파슬리도 듬뿍 뿌렸다.
에그 치즈 타르트는 아직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딱딱한 질감의 빵이나 페스트리는 아직도
입맛이 안당긴다.
펌킨을 마음 가득 즐겼던 시월.
볏짚들이 따뜻하고 좋았다.
사실 서울에서 자라서 이렇게 볏짚을 가까이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트랙터를 타는 동안 우리는 볏짚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엉덩이가 따끔 거려서, 편한 자리를 찾느라
들썩 거리기도 했다.
볏짚이 포근해 보이는 만큼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따뜻하면서도 따끔거리는 것이
투박하다는 말이 딱이었다.
그래도 시멘트 모퉁이 처럼 차갑지 않아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다.
요즘은 맨질 맨질하고 차가워 오래 함께 있으면
서늘해지는 사람 보다는
조금 삐죽하니 투박해도
따뜻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월초엔 작은 마무리가 있었고..
작은 시작도 있었다.
내 바람에 딱 맞게
가을부터 시작하는 다이어리도 하나 찾았다.
가을답게 맛있는 음식도 많았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다.
작은 기억들을 이렇게 조각조막 모아 놓으니
조각 이불보처럼 재미나고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