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꿈.
오직 나의 꿈.
나의 초라한 어깨를 세워주고 빈 두 손에 힘을 넣어주고 허한 마음을 벅차게 채워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꿈이다.
내가 전지현의 몸매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사실 조금 부럽다),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스토리로 인생역전 한 어느 헐리우드 여배우가 부럽지 않은 것도,
어떤 누군가 인생을 마치 아우토반 달리듯 거침없이 달려가는 것을 볼 때도,
이 시간 가운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생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꿈 때문이다.
베드로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예수님께 들은 후, 그의 사랑을 무지하게 받던 다른 제자, 요한의 미래가 궁금해 졌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었을 때 대답을 기억한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어릴 때는, 아니 무슨 예수님 대답이 그렇게 매정하나 생각했었는데 과연 정답이다.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
그것이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삶만 나와 상관이 있다. 내 꿈만 나와 상관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이라도, 아무리 시장에서 지금 안쳐주는 것이라도 해도 꿈은 보물이다. 그리고 꿈은 씨앗이므로 원래 작다. 내가 작은 수박씨를 몇 개 움켜쥐고서 '이걸 키워서 우리 식구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모두 나눠 먹을거에요' 한다면, 그 때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혹자는 콧방귀를 뀐다. 꿈은 너무 작고 사소해서 때로는 그 콧방귀에 날라가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넝쿨이 자라고 수박이 주렁주렁 맺히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타인의 완벽해 보이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 자란 수박 밭을 보고 있는 것일테지.
불공평해 보이는 삶은 놀랍게도 공평하게 모두의 손에 작은 씨앗을 몇 개씩 혹은 몇 가지씩 쥐어 주었다.
그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나도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해 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인생 밭에 뿌릴 꿈이 없다면, 옆 집 과수원 부러워하는게 다 무슨 소용인가? 꿈이 없다면, 신포도를 바라보는 여우 밖에 되지 않겠지. 씨앗 없이 시작된 열매는 없다. 볼품없이 넘어져 아무도 안돌아봐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힘과 용기낼 수 있는 건 나의 꿈 때문이다.
봄에 피는 꽃만이 꽃이 아니다.
여름에 피는 꽃은 화려하고
가을에 피는 꽃은 기대감을 주고
겨울에 피는 꽃은 심지어 숭고함을 느끼게 까지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꿈이 담긴 자신의 마차를 타고 달린다고.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 대신, 내 안에 가득 실린 꿈을 바라본다. 내 꿈이 내가 이은 넝쿨을 타고 열매 맺힐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우리의 꿈은 단지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었고 배움이 끝난 후 지금 우리가 걷고 있고 더 걸어가야 하는 이 길 위에서 꽃 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