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마음을 알아?

서러움.

by 굳찌

Welcome Home.


글자가 귀엽게 인쇄된 하얀 종이가 오래된 기숙사 전화기 옆에서 팔락거리고 있다. 남편이 준비한 아내 환영문. 반겨주려면 번듯하게 공항에 꽃다발이라도 들고 나오시지 그랬냐고 지금이라면 면박을 주었을 법도 하지만, 신혼은 그러지 않는다.


어멍 자기양, 너무 거마벙~

조아?

응 조앙~


세 달 만에 만난 우리는 방긋 거리며 이런 식의 다정한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리고 둘러보는 방 하나짜리 기숙사. 익히 설명은 들었지만 우리가 지낼 대학원 기숙사는 퍼니쉬드(Furnished) 스타일이었다. 침대, 소파, 책상, 냉장고 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 가구들이 이미 구비되어 있는 곳. 많은 학생들이 거쳐가며 오래 써야 하는 가구이니 투박하고 튼튼하며 개성은 몰수된 상태이다. 오랜만에 보는 내 키만 한 하얀 냉장고, 벽에 붙박이로 들어차 있는 책꽂이, 화장실과 방 사이에 벽보고 공부하라고 마련된듯한 붙박이 책상, 짙은 남청색 천으로 덮힌 두 칸짜리 소파, 그 앞에 놓인 둥그렇고 낮은 커피 테이블, 그리고 안방에는 이 집의 모든 나무 색깔과 일치하는 연한 누런색의 프레임을 가진 침대와 서랍장이 놓여 있었다.


그래, 1년만 참자.

게다가 우린 운도 좋지! 이 침대 매트리스는 이번에 새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나의 행운에 만족을 찾으며 엄마가 해주신 분홍색 수가 놓인 하얀 신혼 이불에 눈길을 돌렸다.


화장실도 둘러보았다. 장판 깔린 건식 화장실을 난생처음 보는 바람에 화장실을 보고는 깔깔 웃었다.

"어쩌라고?!" 이러면서 소리도 빽 질렀다.

대체 물은 어디로 나가는 거지? 궁금해하며 화장실을 한참 두리번거리는데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직접 저녁을 해줄 테니 나와서 쉬라고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방에서 두 세 걸음이면 닿는 부엌으로 나갔더니 김치볶음밥을 해주겠다며 준비 중이다.


어머, 우리 자기는 그런 것도 할 줄 아렁?

아니이~ 우리 자기 해줄라공 내가 요리책 바찡~

고마벙~ 역시 울 자기 최고!

이거 봐바, 내가 밥솥도 사놨당?


그러더니 신이 나서 그간 바지런히 장만해 둔 부엌살림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15불 주고 구입한 중고 조지루쉬 전기밥솥, 10불 주고 구입했다는 시커먼 중고 전자레인지, 색깔을 세트로 맞춘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으나 역시 시커먼 5불짜리 중고 토스터기.

그런데 이 중고 삼종 세트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살면서 내가 울리라는 것을 예상 못한 순간이 몇 번 안되는데 이 날이 그중 하루다. 살뜰한 경제관념을 자랑하며 아내의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려던 남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나도 당황해서,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울었다. 결혼식 때도, 신혼여행 갈 때도, 한국을 떠나올 때도, 낯선 미국 시골길을 지나올 때도 울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이 너무 행복한 거니까 울 수가 없었는데. 명색이 신혼이니 이 시커먼 중고 부엌 가전들을 보고 울어도 될 것 같았다. 남편의 위로는 지나가는 라디오 소리 마냥 귀에서 왱왱 거릴 뿐 이었다. 이런 기가 막힌 호의가 분해서인지 혹은 행복을 위해 치러 온 슬픔을 흘려보내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날 저녁 중고 삼종 세트를 핑계로 한참을 울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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