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집
걱정.
사전을 찾아보면,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운다는 뜻으로 나온다. 화로의 장작을 다 태우면 장작더미가 사라지는 것처럼 속도 다 태우고 나면 걱정이 사라질까? 그렇다면야 속을 백 번도 더 태우고 남을 사람이 세상에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속은 태우면 태울수록 걱정더미는 더 생생해질 뿐이다.
한 가지 걱정에 몰입하다 보면 강박이 생기는 것 같고
만 가지 걱정을 하다 보면 불안함에 압도된다.
마치 어릴 적 놀이공원에 있던 ‘유령의 집’ 공포 체험 같이 말이다. 그 안의 모든 것은 실제적 공포를 흉내낸 가짜들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들어가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곳.
분명, 그 모든 위협과 공포는 가짜인데 몸과 마음이 진짜로 반응하는 곳이 유령의 집이다. 어릴 적, 호기심으로 한 번 들어가 본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돈내고 무서워하는 재미를 느끼기엔 그 모습이 좀 미련해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어린아이의 지혜를 다시 빌려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걱정근심이 박제되어 가득 널린 유령의 집에 들어선 기분이다. 마음을 쿵쾅거리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 공포, 염려와 근심거리들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내 마음을 노린다.
박제되어 벽에 걸린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뿔이 달린 머리, 무서운 눈빛과 불뚝 솟은 힘줄은 살아있는 것마냥 생생하다. 문득 겁에 질려 뒷걸음질치다가 그것들이 벽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박제품임을 깨닫고 손을 뻗어 만져 본 적이 있다. 방금 전까지 마음속에 난무하던 걱정들은 스스로 달려나와 나를 무너뜨릴 수 없는 박제된 거짓 공포임을 깨닫는다.
모든 걱정이 박제된 동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모든 걱정이 다 내 삶을 공격할 수 있는 실제 또한 아니다.
그러니 걱정의 공격이 시작되는 듯하면 햇살 아래로 팔을 쭈욱 뻗어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찬물로 세수를 한 후 선반에 쌓인 먼지를 털며 걱정도 같이 털어낸다. 걱정으로 속을 태워봤자 마음에 먼지만 쌓일 뿐이다.
이번주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에 기고한 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http://sf.koreatimes.com/article/20200726/132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