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차장님은 퇴사하셨을까?

부동산 사이트를 뒤적이는 날

by 굳찌

오 차장님은 상가빌딩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타인의 재산 규모를 쫓아다니며 알아내는 정성까지 가진 사람은 아닌데, 당시 오 차장님이 친절하게 말해줬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아주 약간은, 오 차장님을 ‘상가 가진 차장님’이라고 기억하는 내가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튼, 새삼 그분이 떠오른 이유는 요즘 심심하면 부동산 사이트 (www.redfin.com 같은 곳)를 구경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끔 사지도 못할 집들을 구경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상념이 들기 마련이고, 요즘처럼 내가 집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때엔 더 하다.

내가 직접 알고 있는 부동산 부자는 누가 있을까?

유산으로 아버지께 빌딩을 물려받은 친구.

그리고 오 차장님.

(이게 끝. 인간관계가 참 소박하구나)


컨설팅 회사를 다닐 때 오 차장님을 만났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불철주야 일하는 열혈 컨설턴트였으므로, 여러모로 나일론 같은 고객사 차장님을 한심하면서도 안쓰럽게 생각했다. 이제 돌아보면, 정작 불쌍한 처지는 나였는데. 아무튼 우리는 서로가 불쌍히 여기는 갑을 관계였다고나 할까?


나는 그때 차장님은 일을 못하는 분이라고 정의 내렸었다. 하지만 10여 년 뒤 새로워진 시각으로 다시 쓰자면,그분은 단지 회사 일을 열렬히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게 일하실 거면 대체 회사는 왜 다니시냐고?”

‘갑’ 되시는 고객사 차장님께 따져 물었던 날이 있었다.

나도 적으면서 ‘이 기억이 사실인가?’ 의심스러운데...

사실이다.

회식 자리에서 술김에 실수한 거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맨 정신에 회의실에서 말했다.

맞다, 인정한다.

당시 나는 세상 혼자 사는 캐릭터.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사는 캐릭터였음.

아무튼 이런 무례한 질문을 외주 직원인 을로부터 날려 받으신 그분은 눈을 꿈뻑이며 간단히 대답했다.


“이자 내려고 다닙니다.”

아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친절하고 진솔하시다.


차장님은,

상가를 샀는데 이자 내려고 회사에 다닌다 하셨지~

내 돈으로 이자 내면 아까우니 회사 월급으로 낸다했지~

융자 다 갚으면 회사 때려치울 거라 하셨지~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덧붙이셨지~

부동산에 투자할 때 꼭 고려해야 할 것은,

첫째도 로케이션, 둘째도 로케이션, 셋째도 로케이션~

회사가 당신 평생 책임져 줄거라 믿지 말라 하셨지~

당신도 돈 모아 상가나 하나 사두라 하셨지~

예이예이예~


내가 미국에 간다며 회사를 그만둔다 한 후

온 사방 불려 다니면서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그분은 적도 아니고 편도 아닌 모습으로 한 마디 하셨다.

잘 다녀오시라고.

회사에 목숨 걸 필요 없다고.

10년도 더 지났다.


2004년에 마크 저크버그는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페이스북을 설립해서 세상 거부가 되었다. 2006년에 상가 이자 내려고 회사다니던 오 차장님도 이제 퇴사하고 월세 받으며 편하게 살고 계시려나?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렌트비 내려가는 것 보면 다 부질없다 싶으면서도, 어째 부자동네일수록 확진자 수가 현저히 적게 나오는 통계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혹시나 합리적(?) 가격에 나온, 좋은 동네의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면, 코로나 확진자가 확연히 적은 저 동네로 이사가야지 생각한다. 마크 저크버그랑 같은 동네 주민이 되고 싶다는 말이지.

현실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마크 저크버그라고 자기가 10여년 후에 이렇게 크게 거부가 될 거라고 알았겠는가?

부동산 사이트의 미션은 부동산 꿈나무 만들기 였나 의심하지도 말자.


혹시 아는가?

어느 멋진 날, 멋진 집으로 이사갈지?


원래 꿈은 크게 가지라고 있는 것.

집에만 있으니 꿈이 자꾸 자란다.


-051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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