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산책-05142020
긴 온라인 회의를 마치고 산책에 나섰다.
머리에 채워진 여러 말들을 정리하기에 산책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예전부터 생각을 정리할 일이 많으면 걸었다. 집에서 한 두 정거장 먼 지하철에서 미리 내려서 걸어온다던가 하는 식이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빨리 걷는다.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날 조차도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걷기를 택한 날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요즘은 다시 많이 걷는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외람될 수도 있지만
마음이 무거워서 라기보다는 요즘은 살기 위해 걷는다.
머리를 식히러,
무료함을 달래러,
외로움을 날리러,
비타민 D를 얻으려고...
걷는다.
그렇게 걸으니 걸음이 느리다.
오늘은 아이와 남편과 같이 산책길에 나섰는데 빨리 오라고들 난리다. 나는 그래도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은 같은 길을 걸어도 (잘 걷지도 않았지만) 보이지 않던 작은 생명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서 사진에 담고 싶기도 하고.
강제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올봄이 끝나간다.
누군가 지구의 공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온 것만 같다.
흔들리도록 달려서 안보였던가?
산책길에 만나는 작은 생명들이 기특하고 예쁘다.
이맘 때면 인터넷을 뒤지며 열심을 내어 찾아보던 갖가지 바캉스 신상품이라든가 올여름 유행 아이템들에는 관심이 가지 않고, 내 옆의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관심이 간다.
시간이 정지한 줄 알았더니 앞서 달려가 버렸나?
왠지 쓰다 보니 할머니가 된 기분이 잠깐 들기도 한다.
바람만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새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멀리 고속도로의 차 소리도 들리지만 실리콘밸리가 이렇게 고즈넉한 적이 있었나 싶다.
이 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 걸까?
답을 모르면서도 계속 걷는다.
-051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