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산책-05132020
얼마나 날이 따뜻하고 좋으면 오뉴월에는 개도 감기에 안 걸린다는 그 오월이다.
캘리포니아는 탱탱한 오렌지와 아몬드를 쏟아내기 바쁜, 이제 더위가 몰려와야 하는 오월.
그런 오월이 왔나 했는데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꾸르륵 거리는 하늘을 보다가 저녁이 되어서 기대도 안 했던 석양이 비추었다.
석양이 썬룸(Sun room)을 통해 비치자 나는 집을 나섰다. 집에 머물도록 하는 (Shelter In Place) 명령이 떨어진 지 9주 차이다. 처음엔 문자 그대로 집 현관문 밖을 한 발짝도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버틴 것은 7주 차까지 가능했다. 한 달 반을 집에만 있다가 우리 식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부터 시작했는데 미국은 다짜고짜 ‘집에서 안 나오기’부터 시작했다.
그 덕에 집에만 있기 명령이 처음 떨어진 3월 중순에는 휴지, 새니타이저,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 난리가 한바탕 났었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미국도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으면 나았을 텐데... 마스크고 뭐고 집에서 안 나오기를 택한 덕분에 일어난 소용돌이였구나 싶다.
불안과 염려, 공포와 불신이 미국을 마구 휘젓는 가운데 날마다 짬을 내서 다녀오는 잠깐의 산책이 주는 위로는 요즘 매우 크다. 어쩌다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혹은 매일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마음 불편해서 산책을 안 하는 날들도 많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쳐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동네 산책. 주택가라 남의 집 앞마당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산책을 했던 날 만났던 붉은 오렌지색의 꽃나무는 너무 화사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천연덕스러운 화려함. 얼마나 내 기분도 화사해졌던가? 나도 찍고 아이도 찍고. 마치 멋진 궁궐의 정원에라도 놀러 간냥, 우리는 동네에서 꽃 사진을 한참 찍었다.
어제저녁 석양 무렵의 햇살과 뒤섞인 옅은 다홍빛 꽃나무. 더워야 할 오월 달에 부는 쌀쌀한 바람처럼, 석양과 뒤섞인 오묘한 빛깔. 마치 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신비하고 낯선 느낌.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이렇게 낯설 수 있단 말인가? 세 달이 다 되어가도록 적응이 안되고 있는 일상의 낯섦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느 이웃집 앞에 매달린 새 집.
오고 가는 작은 새들을 위한 배려.
섭섭할 까 봐 몇 송이 피워준 것처럼 수수한 진분홍 꽃들까지, 화려할 것 없어도 아기자기한 손길이 안온하다. 낯선 날씨에 서늘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구나.
잠깐의 산책이지만 감사하고 좋았다.
그렇다, 좋았다.
이 와중에 마스크도 안 하고 만나서 반갑다고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잠시 한숨이 나왔지만,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문화적 단결이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려 한다.
그들이나 나나 집에서 일하며 마스크 쓰고 산책이나 가끔 나가는 이 일상이 얼마나 낯설고 혹독한가 이해하기에...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할 뿐.
- 5/13/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