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유제 - 용서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말을 내뱉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사랑의 고백이거나 연봉 협상일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지만.
'편안한 관계'에 들어섰다고 생각될 경우 오고 가는 막말의 향연은 막기가 쉽지 않다.
한쪽이 나이라도 훌쩍 더 많으면 흥미진진한 드라마 전개 시작이다.
한국 사람들은 친한 관계를 편한 관계로 인식하거나
거꾸로, 편한 사람을 친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내 입장에서 편안하게 여겨지는 사람은
대부분 내게 복이 되는 좋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그 '굴러들어 온 복' 같은 편안한 사람들에게 주로 막말 시전을 하면서
복을 뻥뻥 차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글을 쓰면서 나도 그렇지 않은가 되돌아보는 중)
아무튼 무슨 이유였든지 간에 나를 편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함부로 지껄인 '말 찌꺼기'들은 마음에 '침전물'로 남는다. 그 침전물은 원래 '올바른 판단'과 '사랑' 같은 좋은 것들을 영혼과 마음 곳곳에 실어 날라야 하는 마음의 통로에 끼어들고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올바른 판단과 사랑의 흐름이 조금씩 걸쭉해지게 만든다.
심해지면 마음의 순전한 흐름을 막기도 한다.
그 마음 속 찌꺼기들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결국 분노와 복수 같은 것으로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니 이런 말 찌꺼기들이 마음의 통로를 경화시키기 전에 풀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과연 마음의 통로에 말 찌꺼기들과 분노들이 마음에서 덕지덕지 굳어 가기 전에 이들을 녹일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 전, 어떤 노친네의 속 터지는 말을 듣고 분이 나던 차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답은
건강해 지기 위해 무엇을 할까요? 상담했더니
하얀 설탕, 밀가루 음식 끊으시고 운동 꾸준히 하세요 같은,
나도 알고 있는 뻔한 대답을 들은 기분이랄까? 그런데 너무 닮았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더러운 말 찌꺼기가 마음에서 씻겨 나가지를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분노를 못 참고 복수하거나 내 분에 내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행복하고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랬더니 내 마음속 의사가 말했다. 용서하라고.
몸이 건강해지려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처럼, 마음이 건강해지려면 꾸준히 용서해야 한다.
몸의 노폐물이 빠지고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려면
주 3회 한 번에 30분 이상 땀이 나게 뛰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맞다, 매일 5분 뛴다고 안되고, 혹은 하루 한 시간 열심히 달렸다고 한 달 쉬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 못된다.
용서도 마찬 가지.
오늘 한 번 큰 마음먹고 용서한다고 외친다고 해서 용서가 다 안된다.
마음의 응어리가 다 녹아 나갈 때까지 반복해서 용서하는 것이다.
탁한 피가 한 번에 맑아지지 않는 것처럼,
탁해진 마음이 한 번에 맑아지지가 않는다.
내질러 놓은 말 찌꺼기가 크고 더러울수록 (즉 더 열불이 날수록)
모르겠다.
내 그릇이 작아서 그렇다면 할 말은 없는데 나는 한 번에 용서가 다 안된다.
나는 사소한 것도 마음에 침전물이 남는 아주 맑은 피(?)의 소유자다.
누구에게는 바보 같은 소리일 뿐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어떤 말도
내게는 왜 그렇게 거슬리고 화가 나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수질 유지(?)를 위해 그저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
혹자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아프다는데,
너는 왜 그렇게 작은 걸 아파하느냐고, 공중에 떠다니는 저 수많은 돌이 안 보이냐고,
원래 다 맞고 사는 거라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내가 그런 식이었다. 죄송합니다ㅠㅠ)
어떤 이는 아팠어도 그냥 잊고 용서하라고 대충 한 마디 하고는 그냥 자기 얘기를 할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모두 들으나 마나 한 영양가 없는 조언이다.
그래서 그런 속 터지는 조언을 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게 되었다.
운동 안 좋아하는 내가 트레드밀 위해 올라서서 땀이 나게 걷거나 뛴다.
자근자근 발 밑으로 말 찌꺼기를 밟는다.
혹은 공이 부딪힐 때 울리는 소리가 경쾌한 피클 볼이나 라켓볼을 팡팡 쳐댄다.
그럼 마음의 답답함이 같이 팡팡 터져 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타인의 어리석은 말 찌꺼기가 어느 만큼 녹아 나가면 그제야 용서가 가능한 마음의 평정이 온다.
예수님은 왜 제자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을까?
처음에 들었을 땐, 난 세 번 이상은 못해,라고 생각했었고.
다시 들었을 땐,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말인가? 불가능해,라고 생각했고.
이번에 그 말이 떠올랐을 땐, 아.. 한 사람을 향한 용서가 온전해지려면
사실 그렇게 끊임없이 용서를 시도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다소 철학적인 해석으로 기울었다.
(전혀 신학적인 해석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아무튼, 마음의 침전물을 녹이는 방법이 내 경우엔 용서였다.
라켓볼을 두드려 대도 온전히 화가 녹지 않는다.
단지 용서를 실천할 준비 운동을 했을 뿐.
당신이 무심코 먹은 흰 설탕과 밀가루들이 몸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사소한 말 덩이들이 마음에 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사소함은 쌓여서 언제나 큰 문제를 일으킨다.
사소한 말 찌꺼기 제 때 치우기.
그리고 용서는 비로소 내 마음을 숨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