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장바구니 물가가 심상치 않다. 3불짜리 우동팩이 5.5불이 됐다. 한인장은 그렇다쳐도 미국 일반 수퍼에서도 1-2불씩 올랐다. 그 뿐인가? 기름값도 오르고, 집값도 오르고, 명품 가격도 오르고, 연일 물가가 오른다고 뉴스가 시끄럽다.
요즘 백화점 오픈런이 빈번한 이유도 물가상승 영향이 크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가가 오른다고 갑자기 집을 사둘 수도 없고, 물가 상승분 반영해서 몇 프로씩 더 저축할 여력도 없고, 딱히 월급이 치솟을 희망도 안보이니까. 더 비싸지면 못 살 고가의 물품이나 사두자는 심리아닐까?
내 월급은 안올라도 명품백 가격은 몇 프로씩 오르니, 사서 고이들다가 몇 년 후에 제 값 받고 팔 수도 있다니 너도 나도 백화점으로 달린다.
평소 별 관심없던 나같은 사람 조차 그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고, 실천이 빠른 자들은 백화점 오픈런에 가담하고 있다. 백화점 오픈런이 명품에 눈 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태라기 보다 우리 시대의 재정적 자포자기와 욜로, 그리고 새로운 투자 관점이 합쳐진 자화상이 아닐까?
그래, 투자를 꼭 집이나 돈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있나?
예전부터 부자들은 그림, 명품, 보석 등 갖가지 값나가는 물품에 돈을 저장해 왔는데. 일반 서민들은 저축해서 쥐꼬리만한 이자 받고, 집 사서 안정감이나 느끼며 자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집사기도 어렵고 저축 이자도 거의 사라졌으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됐고, 가장 팍팍 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둘러보니, 요즘 열풍인 주식과 걸핏하면 가격이 오르는 명품인 것.
그것이 무엇이든 "오르는 것에 돈의 가치를 저장해 두는 것은 현명한 투자 방법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니 만원 한장 더 저축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그 돈 더 보태 명품 하나를 사두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설하고,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오래 전부터 인플레이션이 오래갈거라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난 주 토마스 바킨이나 미셸 보우만, 라파엘 보스틱 같은 임원들 마저 일제히 공급망 문제가 인플레이션을 더 오래끌 것이고 광범위한 부문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인정했다.
여전히 미국 정부에서는 물가 상승 현상이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기존 예상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는 말이 결국 인플레이션이 코 앞에 닥쳤다는 뜻으로 들린다. 결론은, 요즘 연일 뉴스에서 난리인 공급망 붕괴가 결국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있으며, 한동안 그 영향이 꽤 갈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중인 것 같다.
팬데믹 때 팬데믹 아니라고 버티던 WHO가 생각난다. 그렇다, 인플레이션이 코 앞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명품을 사두는 것 말고, 조금 더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인플레이션이 상승함에 따라, ‘화폐 착각(money illusion)'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화폐착각이란, 화폐임금이나 화폐소득의 실질적 가치가 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불변적인 것으로 보아 명목적인 금액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화폐적 착오'라고도 부른다.
간단히 말해, ‘화폐 착각’은 사람들이 돈을 생각할 때,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돈의 구매력(purchasing power of money)’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명목상의 돈’(사용하거나 벌어들인 돈의 양)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돈의 실제 구매력에 대한 오해는 심각한 재정적 실수로 연결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72의 규칙(Rule of 72)"이라고 알려진 간단한 공식이 있다. 이 공식을 적용해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 화폐 착각이 얼마나 큰 재정적 손해를 줄 수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다. 72를 연간 인플레이션율로 나눈다. 이 공식으로 우리는 같은 액수의 돈이 절반의 가치로 줄어드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8월의 인플레이션율이었던 3.6%를 기준으로 ‘72 나누기 3.6’을 하면 20이 나온다. 즉 인플레이션율이 3.6%라면, 20년 후 현재의 수입은 지금의 절반 수준이 된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저녁을 먹으러 간다면, 오늘 2인분의 식사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이 20년 후에는 1인분 식사값이 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화폐착각’에 빠져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를 하나 해보자. 이 테스트는 엘다르 샤피르(Eldar Shafir),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 아모스 트베르스키(Amos Tversky)의 논문에서 각색한 것이다.
[사례] 아담, 벤, 칼은 각각 20만 달러의 유산을 받았고 같은 액수로 집을 샀다. 그들 각자는 집을 산 지 1년 후에 집을 팔았다. 경제 상황은 각각의 경우에 달랐다.
(가) 아담이 그 집을 소유했을 때, 25%의 디플레이션이 있었다. 아담은 그 집을 산 지 1년 후, 자신이 지불한 주택가격 보다 23% 하락한, 15만4000달러에 집을 팔았다. (숫자상 4만6000불 마이너스)
(나) 벤이 집을 소유했을 때, 가격은 그대로였다. 벤은 집을 그가 지불한 것보다 1% 하락한 19만 8천 달러에 팔았다. (숫자상 2000달러 마이너스)
(다) 칼이 집을 소유했을 때, 25%의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집을 산 지 1년 후, 칼은 자신의 구매가격 보다 23% 오른, 24만6000달러에 집을 팔았다. (숫자장 4만6000불 플러스)
누가 가장 남는 장사를 했을까? 누가 가장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일까?
당신의 생각은?
연구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대답은 칼(다)의 거래였다. 칼이 가장 좋은 거래를 했고, (가)아담이 가장 나쁜 거래를 했다 응답이 대세였다. 실제로, (다)의 경우는 숫자상으로는 최고 판매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돈(real money)으로 환산하면 다르다. 칼(다)의 경우, 인플레이션으로 2%의 손실을 입었고, 아담(가)은 2%의 수익을 올리며 가장 좋은 성과를 냈다. 사실, 아담만이 실제 달러로 수익을 낸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칼이 최고의 거래를 했다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화폐착각’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금 당장 장기적인 재정적 결정을 내릴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상승은 우리의 금융 생활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 구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단 집을 어디든 살 수 있다고 치고, 집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인플레이션을 고려한다면, ‘고정 금리 주택담보대출’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 주택 가격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승하는 경향이 있지만 (로켓 상승을 하는건 아닐지), 주택담보대출 상환액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인플레이션은 결국 더 빨리 자산을 쌓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인플레이션은 빈익빈 부익부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경우,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반드시 주택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주택 보험 적용 범위를 검토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만약, 2000년에 뉴욕에 집을 구입했는데 주택 보험 적용 범위를 조정하는 것을 잊었다고 가정해 보자. 최근 지구 온난화로 시작된 난데없는 폭풍으로 집이 손상됐다면, 인플레이션과 건축비의 상승을 감안할 때, 현재 집의 63%만 교체할 수 있는 금액이 나온다. 원래 기대했던 100%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보험도 마찬가지다. 장기요양 및 생명보험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인플레이션은 여러분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지원금(보상금)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 투자하고 계신가? 인플레이션이 시작 됐다면, 포트폴리오를 살펴볼 시간이다.
일부 베이비 붐 세대들은 은퇴 후 안정적인 수입을 추구하며 채권이 포트폴리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 채권은 항상 위험이 낮은 투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플레이션은 10년 만기 및 30년 만기 국채와 같은 가장 안전한 채권 마저도 가치가 하락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율이 1%만 증가하면 30년 만기 재무부 채권의 가격이 20% 하락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채권을 팔 계획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채권 쿠폰 지불능력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경제가 좋으면 물가 상승 가능성이 커서 채권 요구 수익률이 상승하는데, 채권 발행시점에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아 낮은 요구수익률로 발행된 채권이라면, 인플레이션 발생시 위험이 커지면서 가격이 하락한다.
그래서 채권은 경기와 반대로 움직인다고 이해하면 된다. 물론 물가가 경제성장률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통화량 등에도 영향을 받는데 이 경우도 채권 가격은 물가와 반대로 움직인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힘이다. 안전해 보이는 투자를 위험 자산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70세에 은퇴할 예정인 30세 직장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예상 은퇴 수입을 계획하면서, 연간 5만불(약 5900만원)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지난 8월 미국에서 처럼,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3.6%씩 올라간다면, 은퇴 시점에 5만불은 약 1만2150달러(약 1430만원)가 된다.
즉, 은퇴를 위한 저축도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해서 조정해야 한다. (더 많이 저축하란 얘기)
미국에는 퇴직자들이 미래의 지출활동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금융 상품들이 있다. 이런 금융 상품 구매해 두는 것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많은 경우, 이런 상품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장수 보험(Longevity insurance)’은 은퇴자들이 일정 연령이 지난 후에 일시금을 지불한다. 하지만, 장수 보험은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은퇴자들은 같은 돈을 받았을 때, 예상보다 돈의 실제 구매력이 훨씬 적은 현실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여러분이 65에 이런 보험 상품을 구입했고, 85에 지급 받기 시작하는데 인플레이션이 3.6%에 머무른다면, 미래에 받게 될 돈은 사실상 지금 적힌 금액의 절반에 해당되는 돈의 가치 밖에 되지 못한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연령의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가계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봐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물가는 각기 다른 범주에서 다른 비율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재정 계획이 인플레이션이 시작됐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영향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핵심은 물가 상승의 고통을 느끼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고통을 알아차리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벌써 인플레이션이 코 앞으로 느껴진다. 모두에게 필요한 조치는 다르겠지만, 저축액이나 소비와 투자의 방향들을 재정비해보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스: https://www.wsj.com/articles/inflation-money-illusion-11634049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