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하게 미래를 열어가는 우리 딸(이하, 민이)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부부의 추억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작게는 변화를 감지할 때
크게는 도전이나 위기에 직면할 때에 내 안에서 먼저 작동되는 감정(感情)이 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내가 자주 잘 속아 넘어가는 ‘감정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7년 02월 24일,
우리 딸은 모대학원에서 석사학위수여를 받았다. 당당하게 사각모를 쓰고 활짝 웃으며 우리 부부를 반기는 민이를 보자마자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와 콧등이 찡하였지만 나도 아내도 딸아이처럼 그 눈물을 꿀꺽 삼켰다. 민이는 2년 전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9년 전 여름, 민이가 유학을 떠날 때 세계경제는 리먼 사태로 인하여 경기가 불안정하였고, 우리는 민이를 유학 보낼 만큼 충분한 여유가 없었다. 은행잔고에는 잘해야 일 년 정도 버틸 수 있는 학비밖에 없었다. 우리 가정은 자녀들로 인하여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고 나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민이가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진학을 하자 지인들은 아낌없이 축하를 해주었다.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자녀의 굳은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부모가 흔들림 없이 자신들만의 방식을 굳건히 지키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자녀를 지지하고 기다려 주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부모만이 가지고 있는 넘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고 심려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부모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다 함께 기뻐한다. 그 기쁨은 부모가 온갖 마음 고생을 다하면서 기다린 인내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자 ‘우리의 교육 방법이 옳았어!’라는 독백을... 속삭임을 입증해주는 소중한 경험이고 자녀가 부모에게 보여준 사랑의 보답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겨울 한복판 빈자리에
봄날 같은 햇살이 내려앉은 것과 같은 아내와 마음껏 소리 내어 즐기고 싶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게 즐기고 싶은 기쁨을 뒤로 하고 다가오는 경제적 위기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두려움과 마주해야만 했다.
우리부부는 경제적 해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한 가지 결심만은 꼭 해야 했다. 다음날 민이는 우리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씩씩한 모습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975년, 서울대학교)
1975년 초여름,
휘청거리는 급경사에 폭 좁은 철판다리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이마에서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목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내지만 그보다도 등짐으로 진 벽돌은 여전히 내 어깨를 파고들었다. 나는 잠시 초여름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유리창이 없는 도서관 창틀너머로 오가는 대학생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지난봄부터 서울대학교는 동숭동에서 대학 본부와 일부 단과대학들이 관악캠퍼스로 이전을 하고 있었으며, 나는 관악캠퍼스의 중앙도서관 건축현장에서 벽돌을 등짐으로 나르고 있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그해 늦은 겨울,
열여덟 살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하여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일념(一念)으로 낮에는 일하면서 밤에는 광학분야의 일본어 책을 어렵게 구하여 데카르트처럼 ‘빛(光)’을 연구하였다. 평소에 기계를 잘 다루고 손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당시 광학계의 선두주자였던 대한광학공업㈜에서 렌즈(Lenz) 코팅 기사로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렌즈를 깎고, 프리즘에 반사된 무지갯빛(光)에 빠져있는 일상이 몸에 배어있을 무렵 한겨울에 친구(善友)가 보내준 한 통에 편지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천재(별명)야! 잘 있었니?
네가 서울로 올라가서 고생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건강하지?
…… <중략>……
그리고 나는 이번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였어.
축하해주렴. 서울에 올라가면 그때 만나서…
중학교 때부터 같이 수학하던 가장 친한 친구의 ‘서울대학교’합격 소식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들고 지금 민이가 서있는 관악캠퍼스 교정에서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 오기도 전에 나는 모교로 돌아가 교장실 문 앞에서 이틀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으며, 교장실 유리창에 부딪쳐 되돌아온 그 편지는 내 인생의 전환점(Turning Point)이자, 성공으로 행복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 가출한지 일년 만에 모교로 돌아간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건네준 첫 번째 결정이었다.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공인(工人)이 그의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연장을 벼린다.]
-안심논어, 위령공 9-
안심논어의 역자 조중빈교수는 논어의 기(其)는 영어의 정관사처럼 구체적인 것을 지칭할 때 쓰이며, 특별히 ‘자기(自己, 제 몸)의 무엇’을 말할 때 쓴다, 그러므로 ‘자기의 현명함, 자기의 느낌’으로 번역하였다. 나는 그 말씀에 동의한다. 공인(내가)이 갈아야 하는 것은 비단 연장(器)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己)임을 논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고학으로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모그룹에 입사하여 ‘제 3의 물결’인 정보통신분야에 편승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는 거울(Mirror)과도 같은 서울대를 나온 그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그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일과 공부에만 파묻혀 살았다.
봄이 왔지만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지 못하면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명예만 좇았다. 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명예롭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명예를 좇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리라는 기대로 열심히 기계(Working Machine)처럼 살고 있는 나에게 봄바람처럼 아내가 들어왔다. 그녀는 목석(木石)같이 피아노 줄처럼 팽팽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꽃 향기와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가진 것 하나도 없는 나를 반대하고 있는 부모님의 뜻을 물리치고 나와 결혼하였다.
1995년 여름,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사교육(학원)에 보낼 돈을 모두 모아 비행기 표와 바꿔서 유럽으로 '가족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의 관심사는 ‘2호선’안에 있는 대학에 어떻게든 자녀들을 진학시키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주변의 학부모들이 유명한 학원을 알아보고 입시정보를 모으는 사교육 열풍 속에서 “민이 엄마,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조언으로 인하여 초조해질 때마다 배낭을 메고 또 다른 대륙을 밟았다. 그래도 불안감을 느낀 나는 두려움을 떨처내려는 듯 하루도 빠지지 않고 틈을 내어 아이들과 영어단어 맞추기 놀이를 하였다.
[요즘, 웬만한 가정에서는 다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학과 과외나 예체능 과외 등을 저희는 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매년 아이들과 함께 배낭여행을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성인이 될 무렵이면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수없이 많은 것을 직접보고 느끼게 되길 바랍니다. 그런 저희를 보고 주위에서는 ‘혹시, 아이들이 남들보다 뒤쳐지면 어쩌려고!’하며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장에 과외를 못하여 아이들이 일류대학을 못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부모들과 함께 보낸 여행지에서의 나날들이 자녀들에게는 소중한 추억과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그 안에 우리들이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잘 해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요?]
-‘96년 월드트래블, 여행잡지 인터뷰중에서-
※ 가족 배낭여행은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건네준 두 번째 결정이었다.
딸아이가 오른 비행기가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 우리 부부는 결심한대로 작은 아파트로 짐을 옮기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지만 가정 안에서 아이들이 없는 위기를 어떻게 감내하고 대처해야하는지 그 때 나는 그 해법(解法)을 알지 못했다.
2009년 새해가 되면서,
우리부부는 정말로 재미없게 말도 없이 TV속 리포터가 전하여 '보신각' 타종을 지켜보았다. 삼 년 전에 아들을 인도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보내고, 이년 전에 딸아이가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던 날 새롭게 주변을 정비하고, 생활도 단순하게 만들어 우리 부부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환경을 바꾸고 싶었다. 처음에는 신혼으로 되돌아간 것 같이 자유로웠고 홀가분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와 나는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십 년이 넘도록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 때는 몰랐지만 녀석들이 집을 떠나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조금씩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 상실감을 나는 우리 부부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과제’라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투사처럼 나와 아내를 밀어붙였다.
엎친대 겹친 격으로,
미국 발 금융위기(Global Financial Tsunami)는 두 아이들을 유학 보낸 우리에게도 많은 경제적 차질을 가져왔다. 회사와 내게 다가온 이 위기를 나는 기회로 바꾸고 싶어서 ‘해외사업’개발에 매달리면서 낮에는 회사로 밤에는 영어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덩그러니 혼자 내버려두고 나는 또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각박해져가는 살림에 지친 아내가 밤 늦게 잠만 자러 들어오는 나에게,
"당신은 철없는 남편이야, 집에 누가 아픈지, 무엇이 중한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하고 싶은 데로만 한다”고 소리쳤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한 생각에 고개만 떨구었다. 그리고 어금니를 깨물고 혼자 되뇌이며 다시 회사와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두려움에게 지기 싫다!'
'여기서 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The University of Iowa,
졸업식장에서 딸아이가 세계 각국에서 온 덩치가 산(山)만한 금발의 대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행복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내 생애에 이렇게 행복한 적이 다시 있었을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우리 부부가 그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낸 보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내와 나 자신에게조차 들키기 싫었던 두려움을 이겨낸 기쁨의 결정체이기도 하였다.
2015년 봄,
한세대 전에 가난한 청년이었던 내가 등짐으로 벽돌을 나르고 비지땀을 쏟으면서 도서관을 지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민이와 일식집에서 마주 앉았다. 나는 딸에게 “민아, 우리는 네가 엄마 아빠의 교육방식이 옳았고 그 때 그 결정을 잘했다는 것을 입증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라는 고백하였다. 민이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고 싶다고 말할 때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딸아이의 꿈을 우리 가정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좌절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민이의 공부를 지원해주다가 학비를 보낼 능력이 안 되면 그때부터는 민이가 스스로 해결하리라는 믿음을 갖기로 하였다.
즉,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가 학비가 떨어지면 서울에서 그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것처럼,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학비가 떨어지면 미국, 그 곳에서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단순한 믿음이지만 배수진(背水陣)같은 절박한 우리의 전략이자 간절한 기도였다. 우리의 고백을 듣고 있는 민이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 참고 있었으며 그렇게 좋아하는 초밥을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2. 사랑하는 사람은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민이가 졸업한 지금,
우리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회사와 사회 그리고 국내정치와 해외시장의 여건은 어렵다 못해 아주 혼란스럽다. 한국의 산업공동화(産業空洞化)는 더욱 더 심화되고 그 와중에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물결이 다가오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더욱 더 불투명해졌다.
'손 로봇' 과학자
[‘4차 산업혁명’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정말 창의적이라면, 네 아이디어가 정말 혁신적이라면, 어디 한 번 맨땅에 헤딩해봐.”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셔야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 청년은 알을 품은 어미와 같습니다. 그 작은 알을 치열하게 안고 있어야 마침내 알 속에 있는 것이 세상에 나옵니다. 창의적인 삶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불안을 떨쳐버리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는 깨진 달걀들이 낭자한 처참한 사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민아,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손 로봇’을 발명하신 로봇 과학자 조규진교수님의 말씀처럼 기성세대인 우리가 네게 제공할 안전망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구나. 하지만 아빠가 빈주먹으로 ‘제3의 물결’의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오면서 벼린 무기(사유와 연장) 그리고 갑옷(날개)인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자.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서로 다르고 완전하지 못한 것들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사회입니다. (온전하지만 잠시) 나약(해진) 한 인간에게 고독한 고행을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가 오늘 굴려 올린 바위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곳에서 무언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불완전한(아이디어를 가진) 인간이 승리하는 사회입니다. 부디, 용기를 가지시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상은 쉼 없이 움직이면서 불완전한(생각을 갖은) 여러분이 던져 줄 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중용(中庸) 수장의 첫 대목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네가 엄마 아버지의 사랑으로 태어난(天命) 사랑(性)으로 완벽한 인간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인간은 원래 온전한 자들이었으며 그 온전함에 대한 욕망과 추구에 붙여진 이름이 사랑(에로스)이다.’라고 플라톤은 향연(201C)에서 인간의 타고난 온전함(性)을 말하였다. 고대 그리스어 아레테(ἀρετή, arete)의 개념은 덕(德)을 의미한다. 칸트이후의 철학자들은 덕(arete)을 인간이 도달해야만 하는 최고의 품성(品性)으로 도덕적, 감정적, 정신적, 육체적 탁월함이라고 다구치지만 그것은 명백한 인간의 본성(本性)에 대한 왜곡이다.
덕(德, arete)은 곧 사랑으로 완벽함을 의미한다.
동양철학에서 인(仁)은 부모의 사랑이고 사랑으로 태어난 나는 사랑덩어리로 덕(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덕(德) 그 자체이므로 덕(사랑)을 나누(分)면서 살아간다. 그것은 케이디가 자기도 모르게 아빠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처럼('케이디'는 최근에 민이와 같이 읽은 ‘숨결이 바람이 될 때’의 저자 폴의 어린 딸이다.) 네가 아빠의 딸이기에 내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우리는 ‘덕분(德分)입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나보다.
다시 말하면,
민아!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고 완벽한 존재이다. 완벽하기 때문에 네 앞에 펼쳐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너를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안감이 다시 완벽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욕망)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네가 손에 쥔 첫 번째 무기이자 연장(利器)은 지성의 울림 이전에 네가 태어나면서 이미 가지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고 있는 너의 존재인 따뜻한 ‘사랑’이다.
두 번째로,
서머셋 모움의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는 중용(中庸)의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또 다른 해석이다. 인간은 원초적 굴레에 머물고 싶어 하는 모태(母胎)회귀 본능(욕망)이 있다. 라캉이 이것을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겨나는 '분열 경험’이라고 설명하면서,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초적 경험에 따라 결국은 완전한 충족을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 즉 '어머니와의 합일(合一)을 욕망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그 굴레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 굴레는 알을 품은 어미처럼, 비바람을 막아주는 아비와 같이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안락함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굴레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우리에게 익숙한 굴레가 몸,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라면 이제 네가 학교를 떠나야 하듯이 우리는 몸과 마음과 사고의 틀, 다시 말해서 ‘뫔’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뫔’은 몸과 마음의 합성어다.) 열역학 제 1법칙은 모든 신체는 변화한다고 정의한다. 우리 몸(Body; 세포, 손톱, 치아, 머리카락 등)은 매 순간 생로병사의 순환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우리 몸은 모두 바뀌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 또한 이 순간에도 바뀌고 있다.
이십 여 년 전에,
한국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2호선’안에 있는 대학에 집중할 때, 우리 가족은 뒤로 돌아 더 넓은 세상을 본 것처럼,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서있을 수 있는 것처럼 위기에 직면할수록 나를 되돌아보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확장과 유연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그 결정을 신(神)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면서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길을 찾을 수가 없으며, 생각을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고전의 가르침이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민아, 아빠는 솔성(率性)하면 오빠랑 같이 너를 등에 업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를 산책(道)할 때 솔(率)잎 하나가 등 뒤에서 잠이 든 네 어깨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장면이 떠오른다.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는 그렇게 생각의 여백을 갖고 여명의 벽을 넘어 네게 건네진 두 번째 무기인 사유와 연장(利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은 중용(中庸)의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를 아프리카 속담이 설명해주고 있다. 원주민들이 멀리 여행을 떠나려면 정글과 사막을 지나야 하고 수 많은 맹수들을 피해야 하는데 함께 가는 길동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엄마 아빠는,
너희가 성인이 되어서 만나게 될 세상을 예측하고 싶었지만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미리 내다보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화(Globalization), 가속화(Acceleration), 관계화(Human Networking) 현상에 촛점을 맞추어 너희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 국제적인 인간관계(International Human Network)를 확보하는데 온 힘을 쏟을 것을 당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가 보는 새로운 시대는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Available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내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양하나 지식을 연결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Creator의 시대인 것입니다.
...... <중략> ......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기술이 이런 인간을 위해서 진화하는 시대입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식과 기술이 활용 가능해져서 이것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인간의 노력이 기술진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사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오는 시대에 내 아이디어 따위는 세상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틀렸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 분야가 아니라고 해서 남의 아이디어를 흘려듣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의 실현되지 못한 소망이 여러분의 접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아,
조규진교수님의 말씀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모든 해답(解答)이 이미 네 안에 다 있는 것이구나. 네가 가족과 함께 또는 홀로 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 15개 나라, 50여개 도시에서 만나고 사귀고 있는(지금도 너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대만 친구 ‘한니’부부가 서울에 있지 않니?) 그 친구들이 너와 함께 미래를 열어줄 진정한 연장(利器)이 아닐까?
아빠의 비망록엔,
오빠와 민이의 모든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희망’이란 폴더가 있다. "희망(hope)이란 단어가 영어에 처음으로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폴은 이야기한다. 아빠의 ‘확신’은 바로 민이 너 자신이며, ‘소망’은 너를 위하여 카펫처럼 펼쳐놓은 이 세상을 그 미지의 세계를 네가 여행하면 사귄 친구들의 손을 잡고 함께 고쳐(修)가면서 너의 길(道)을 걸어가는 것이다.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는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선조들의 가르침이자 네가 대를 이어서 전해줄(敎) 귀한 깨달음이다.
3. 호랑이(위기) 등에 바람같이 올라타자.
민아,
아직도 학교와 우리의 품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니?
민이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아빠는 50여개 나라, 70여개 도시를 바람처럼 자유롭게 여행하였다. 아빠는 바람이 좋아 바람을 닮고 싶었다. 바람(공기)은 우주가 품은 지구라는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둘러싼 양수와 같은 것이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바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네 곁에 존재할 것이다. 때로는 동남풍으로 벼를 자라게 하고 돛단배의 동력이 되어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지만 태풍, 폭풍과 같이 갑자기 위기(危機)라는 얼굴로 바꾸기도 한단다.
논어, 첫머리에 있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습(習)은 어린새끼 새가 둥지를 떠나 드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둥지에서 추락하는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백(百)번도 넘게 퍼덕거리며 날갯짓(羽)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민아,
졸업을 하면서 네 둥지에서 바라본(우리가 만든)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세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바람같이 올라타자. 눈앞에 펼쳐진 밀려오는 파도와 깎아지른 절벽이 아직은 두렵겠지만 아빠의 온기가 남아있는 이 갑옷을 입고 바람(위기)을 기회삼아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구나!
에필로그(Epilogue),
군자, 불우불구(君子, 不憂不懼)
군자는 염려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데 나는 왜 두려워하는가?
십년의 세월이 다시 지나갔다.
서머셋 모움은 ‘인간의 굴레’를 발표하면서
그는“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나는 과거의 슬픔과 불행한 추억에서 영원히 해방되었다”라고 고백하였다. 나의 자전적 고백 같은 ‘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인 이 글을 쓰는 순간, 나 또한 젊은 날의 슬픔과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추억에서 온전히 해방되었다.
나는 아직도,
위기에 직면할 때면 작아지고 두려운 감정(感情)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아차’하고 방심하는 순간에 속아 넘어가기 쉬운 ‘감정의 함정’이란 것을,
이제,
나.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지혜로운 사람은 현혹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