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둘"을 이틀 앞둔 그 날, 세상을 향해 날다
"우리 교환학교 발표 났어! 근데 왜 4순위가 적혀있지?"
"나도!!!! 쓴 적이 없는 4순위야. 다시 확인해봐."
"진짜야. 갑자기 4순위에 UCSC 적혀있어."
"뭐지?!?!?!?!?"
교환학생은 나의 평생의 꿈이었다. 대입 자기소개서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고 적을 만큼 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자유롭고 싶었고 당당하길 바랐으며 내 목소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3학년 1학기, 즉 2020-1학기 교환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순간 나의 온몸은 이미 심장이 터질 듯한 설렘으로 가득 찼고 고민없이 지원을 결심했다. 무조건 미국으로. 영어영문학과 학생이라 미국을 가기로 결심한 건 표면적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의 자유로움과 문화의 다양상, 사람들의 개방성을 항상 동경해왔고 초등학생 때 한 달 동안 지냈던 미국에서 난 나름 나만의 세상을 무척이나 넓혀 왔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 했던 2019년 여름의 나는 초등학생 때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한 학기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내 인생을 답을 내리겠단 생각으로.
국가만 정한다고 교환학생을 훌쩍 떠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화려함과 분주히 오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뉴욕이 있는 동부로 떠날 지 아니면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 속 여유로움을 만끽할 서부로 떠날 지 등등 어느 지역을 갈 지도 큰 고민거리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서부를 택했다. 삶의 여유도 필요했고 초등학생 때 이미 동부를 나름 가봤으니 새로운 곳에서 지내보자는 의미였다. 내가 지원했던 곳은 University of California라는 캘리포니아 공교육 시스템이었고 그 중 1-3순위를 제출했다. UCLA-UC Berkeley-UC San Diego 순으로 지원했는데 결과가 나오는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지원하지도 않은 4순위에 UC Santa Cruz라는 곳이 적혀있었고 이미 나는 직감적으로 들어본 적도 없는 곳으로 가야한단 걸 느꼈다. 그게 바로 위 대화다. 우연히 대학에서 만난 제일 친한 친구와 둘다 지원한 적도 없는 학교로 함께 떠나게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더 생각지도 못한 친구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친한 친구가 함께 간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른다. 서로가 있었기에 더 수월하게 준비과정도 마쳤고 함께 떠날 다른 친구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보내준 연락망을 통해 같이 교환학생을 떠날 6명의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1월 3일이 UC Santa Cruz의 Winter Quarter 개강 날이었는데 자연스레 우린 조금 더 일찍 출국해서 그 유명한 대도시, 샌프란시스코를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모두 다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타고서.
2019년 12월 30일 오후 8시 10분. 아시아나 항공. 부모님, 이모와 눈물의 이별 후, 나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올랐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벅찼고 설렜으며 미국으로 가던 그 열 몇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진짜 미국인처럼 살아야겠다, 나를 찾겠다, 끝내주게 지내다 오겠다, 그 누구보다 알찬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겠다." 이 말들만 수 백 번, 아니 수 천 번 되새겼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야지' 하면서.
그리고 그 때의 난 몰랐다. 끝내주게 지내던 내가 예상치도 못한 가장 비극적인 변수, 코로나 바이러스로 출국 3개월도 안 돼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게 될 거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