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날씨

걸음 둘: 멈춘 감정, 다시 흐르다

by 그루 햇살나무

내게도 마음속 서랍의 해묵은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 하나의 특별한 시작이 있었다. 상담학 수업 중, 교수님이 던진 질문 하나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날씨로 표현한다면, 어떤 날일까요?”

나는 이제 막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는데,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료들이 잇따라 대답을 이어갔다.
“먹구름이 묵직하게 깔려 있어요.”
“햇빛 가득한 맑은 날이에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해요.”

팝콘처럼 자유롭게 쏟아지는 그들의 말. 순간, 그 서슴없음이 내게는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제서야 내 마음에 드리워져 있던 짙은 구름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있다고 말한 이에게 교수님이 묻는다. “그 구름이 마음속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나요?” 잠시 생각하는 사이, 그녀의 내면에서 조용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자신 안에 감춰진 무엇인가를 스스로 마주하고 알아주는 순간이다.

반면,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하려 애썼지만, 그 먹구름이 언제부터 머물렀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글쓰기와 사색에 익숙해 내 세계를 잘 안다고 여겼지만, 생각의 영역과 달리 감정은 탐색의 영역에서 멀리 놓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를 곱씹어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내 마음을 묻는 목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교수님의 질문이 낯설었던 까닭이다. 감정을 묻고 표현하는 일이 권장되지 않았던 문화적 뿌리, 그로 인한 정서적 언어의 빈자리가 있었다. 또 하나는, 가족사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그림자였다. 부모님의 어깨에 드리운 삶의 무게에 차마 나의 짐을 더하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선택이기도 했다.

상담수업의 질문 하나가 익숙했던 세계를 낯설게 비추며, 내면 깊숙이 감춰진 나를 마주하게 했다. 그날 이후, 묻어둔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마주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늘 당신 마음은 어떤 모습인가? 오래 전, 그 질문 하나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듯, 이번에는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대기를 느껴보자. 햇살 쏟아지는 푸른 하늘인지, 깊은 협곡 안개가 스며드는 적막함인지, 짙은 먹구름 묵직하게 드리운 스산함인지, 혹은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한낮 같은지.

하얀 종이 위에 마음의 하늘을 크레파스로 그려보아도 좋다. 떠오르는 감정의 이름도 함께 적어보자. 크레파스를 손에 쥘 때면, 손가락이 유년기의 흙냄새를 기억한다. 크레용의 밀랍은 생각의 각인을 녹이고, 뭉툭한 선은 어른의 손끝을 어린이의 흔들림으로 되돌린다. 다른 도구들보다 가리지 않은 감정과 더 깊이 이어지게 한다.

남에게 설명하려는 마음날씨가 아닌, 그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고 표현해보자. 슬픔과 걱정, 때로는 분노나 두려움까지… 그 모든 감정은 삶이라는 캔버스에 번지는 고유한 빛깔, 당신의 진실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무엇에 아파하는지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렇듯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어느 길로 걸어갈지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뒤,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하자. 오늘 이 순간에 머물고, 지금의 경험과 마음에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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