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물길

걸음 둘: 멈춘 감정, 다시 흐르다

by 그루 햇살나무

걱정과 두려움 같은 감정은 불편하기에 종종 밀어내고 싶지만,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찾아오는 걱정은 우리를 앞으로 밀어내는 바람이 되고, 예상치 못한 위험 속에 솟구치는 두려움은 지켜야 할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그러나 그 언어를 무시하거나 억누를 때, 우리는 삶이 전하는 의미심장한 속삭임을 듣지 못한 채, 어느덧 감정의 범람 앞에 위태롭게 서게 된다.

뉴질랜드는 비교적 자연재해가 드문 땅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파도는 이곳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3년 1월, 내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에는 전례 없는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도로가 물에 잠겼고, 차들은 역주행 하며 거친 물길을 피해 달아났다. 낮은 지역의 집과 상가, 공항마저 속절없이 물에 잠겨 모든 비행이 멈춰 섰다. 시시각각 SNS에 올라오는 영상들은 현실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그 날 이후 비가 오면,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감돈다. 모두들 집과 주위를 점검하고, 모래주머니를 가져다 놓기도 한다. 우리 집은 첫 홍수 때는 무사했지만, 다시 폭우가 내린 날 아찔한 장면을 마주했다.


마당 한 켠에 고인 물이 서서히 집 쪽으로 밀려와, 한쪽 벽에 차오르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이 삽을 들고 나가 땅을 파 물길을 내고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자, 집을 향하던 물은 이내 방향을 틀어 맨홀로 빠져나갔다. 단 한 줄의 물길이 집을 지켜낸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홀로 버티다 한계를 넘으면, 감정의 물결에 휩쓸릴 위험이 있다. 때로는 믿을 수 있는 손길과 함께, 그 감정이 안전하게 흘러갈 길을 내어 주어야 한다. 누군가의 존재가 조용히, 안전한 모래주머니처럼 그 길을 지켜주기도 한다.

상담실을 찾는 이들 중에는, 수년간 눌러 담았던 슬픔과 절망, 자책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너무 오래되고 큰 울음은, 방안의 공기마저 뜨겁게 데운다. 온 몸을 진동하듯 울고 있을 때, 나는 서둘러 티슈를 건네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은 함께 머물며, 둑 너머에 갇혀 있던 감정의 에너지가 제 길을 찾아 나아가길 기다린다.

충분히 시간이 흐르면, 울음은 잦아들고 숨소리가 안정되어 간다. 고통이 어찌 울음 한 번으로 다 씻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감정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면, 어느덧 고단했던 얼굴 위로, 울다 막 잠든 아기의 숨결 같은 평온이 깃든다. 과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허락하는 데서 오는 선물이다.


후에 다시 마주하면, 치유에 있어 큰 걸음을 옮긴 듯 이전의 무거움이 많이 씻겨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점차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져 온다. 때때로 여전히 슬프고 아프겠지만, 이전처럼 오늘을 짓누를 만한 무게는 아닐 것이다.




당신에게도 쌓아둔 눈물이 있는가. 엄마라서, 남자여서, 가장이어서, 장남이고 장녀라서, 혹은 둘째라서… 수많은 이유로 감정을 억누르는 이들이 있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감정의 레이어가 여러 겹으로 단단히 쌓여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리가 있다. 긴장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로 돌아오는 자리, 감정을 투명하게 마주하고, 수용하며, 토닥일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내게 지지가 되어주는 이들과의 연결이 있는 자리다. 알코올에 기대거나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울면 더 깊은 자기연민에 빠져들 수 있으나, 영혼의 온기를 지닌 누군가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라면, 눈물이 비로소 스스로 길을 찾는다.

그 눈물이 흘러간 자리에, 마음의 길이 새롭게 열린다.



이전 04화얼음 땡, 고슴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