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땡, 고슴도치

걸음 하나: 내 마음과 마주 서다

by 그루 햇살나무

뉴질랜드에 온 지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다. 한국과 12시간 떨어진 남태평양의 섬나라, 어떻게 이렇게 먼 곳에 와 살게 되었을까? 삶에서 내가 선택한 길들 뒤에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이끄는 순간들이 때로 느껴진다. 2~3년 공부하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지금껏 이곳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남반구, 계절과 별자리까지 한국과 반대인 이 나라. 처음 도착했을 때 언어와 문화는 물론, 스위치를 내려야 불이 켜지는 사소한 낯섦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다. 북반구의 상식으로 남향 주택을 고르다 맞는 추운 겨울, 익숙한 렌즈를 깨뜨리는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이도 있다. 고국을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내게 익숙했던 인식과 시야는 경험의 한계 속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늘 마음 한 켠에는 향수가 스며 있지만, 낯선 곳에서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것이 있다. 파란 하늘과 길게 흐르는 흰 구름, 자주 피어나는 무지개, 투명한 공기,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 자연이 삶에 가까워서일까, 뒤뜰 잔디 위로 고슴도치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날도 있다. 신기하고 반가워 가족을 불러 모은다. 몸집에 비해 작은 발로 꼬물꼬물 걷는 모습이 이국 땅의 긴장을 잠시 잊게 한다. 그 앙증맞은 몸짓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까이오면 고슴도치의 반응이 흥미롭다. 순간 얼음처럼 가던 걸음 멈추고, 얼굴은 땅에 묻은 채 엉덩이만 하늘을 향한다. 충분히 숨었고,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죽은 척’ 하려는 걸까?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겐 재밌고 귀여운 모습이나, 고슴도치에게는 극도로 긴장된 순간인 듯하다. 잠시 곁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누르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인기척이 사라지자, 얼음 땡 놀이라도 하듯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긴다.

사람도 때로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두른 듯, 누군가 다가오면 만남을 피하거나 지나치게 예민해지기도 한다. 기질적으로 내성적이라 관계 맺기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다가온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를 위기나 적대감으로 느낀다면,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 아닐까? 고슴도치의 가시는 공격용 무기이기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지키도록 주어진 정교한 방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다른 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경험들이 많이 아팠고, 그 상한 감정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에 얼어붙은 아이, 배신당한 신뢰에 심장을 단단히 감싼 청년, 사회적 편견에 영혼의 굴레를 씌운 장년. 각자의 등에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돋아 있다.


그러나 깊은 실망과 상처가 만든 방어적 태도는, 선의로 다가오는 만남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한다. 가시를 세우고 스스로를 보호한다 여기지만, 진심과 진심이 닿는 친밀한 관계의 결여는 지친 영혼을 더욱 외로움과 싸늘한 추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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