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셋: 일상 속 빛을 만나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그림 같은 추억이 남듯, 우리의 삶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순간들이 깃들어 있다. 때로는 가장 깊은 절망의 끝에서야 비로소 그 빛을 마주하기도 한다.
절망의 끝에 선, 한나 씨(가명)*의 이야기다.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너져 가던 늦은 새벽, 그녀는 무작정 차를 몰아 바닷가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순간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고, 새벽 어둠을 머금은 깊고 검푸른 바다가 마치 유일한 답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저곳에 몸을 던지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삶을 놓으려는 그녀를 붙잡듯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뜨거운 목소리가 솟구쳤다.
‘이 정도 사는 게 어때서?’
짧지만 묵직한 그 소리가 새벽의 적막을 뚫고 그녀를 붙잡았다. 한 번도 스스로에게 건넨 적 없던 낯선 말이었다. 놀랍도록 단호하고 뜨거운 긍정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위로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오래 참아온 말을 터뜨리듯,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남들이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괜찮다면, 그걸로 괜찮아.’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나처럼 살아낼 수 있겠어?’
‘괜찮아, 한나야.’
‘이대로도 충분히 잘해내고 있어!’
지금 돌아보니, 혹여 지나가는 누군가 보았다면 미쳤다 여겼을지도 모른다 싶다. 하지만 그 순간, 그렇게 외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절망과 우울이 그녀를 바닷가 끝까지 몰고 갔지만, 그녀를 건져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를 향한 깊은 수용과 흔들림 없는 긍정의 선언이었다.
고통은 우리를 파괴할 수도, 단련할 수도 있는 불꽃이다. 그 불꽃을 외면하지 않고, 상처받은 자신을 끌어안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회복의 빗장을 열어간다. 깨어진 듯 보이는 그녀의 투박하고 불완전한 삶도, 일상을 있는 그대로 품는 ‘괜찮다’는 수용의 숨결 속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일어설 수 있었다. 한나씨가 그랬듯, 자기 존재에 대한 온전하고 따뜻한 존중,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용기가 하나로 이어질 때, 어둠을 지나 새벽의 빛이 문 앞에 성큼 다가온다.
* 이 글에 등장하는 한나 씨의 이야기는 당사자의 소중한 동의를 얻어 수록되었음을 밝힙니다.
절망의 바다를 건너온 그녀의 용기가, 또 다른 한나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