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낯선 땅,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만나다
뉴질랜드에서는 트럭 위에 실린 집이 도로를 달리는, 이색적인 풍경을 종종 마주친다.
집을 차로 옮기다니...한국에 살 때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그것이 가능한 건, 나무로 지어진 목조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웬만한 크기의 집은 트럭 한 대에 실려 옮겨지고, 규모가 큰 집은 반으로 잘라 이동한 뒤 다시 이어 붙인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늦은 밤이나 새벽에 옮기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가끔은 산책 중에 땅에서 뜨여 차에 올려진 집을 발견하곤 한다.
이번 주는 그 생경한 풍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앞집이 그렇게 떠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아래에는 트럭 두 대가 대기하고, 누군가는 집 한가운데 절단선을 맞추어 자르고 있다. 오늘 밤 이동 예정이라, 도로에 주차된 차들은 미리 옮겨 두어야 한다.
집이 아닌 '시간을 옮기는 풍경'
문득 궁금해진다.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토록 비효율적인 수고로움을 자처하며 오래된 집을 힘겹게 옮기고, 이어 붙이며 다시 쓰는 걸까?
대륙과 멀리 떨어진 섬나라이기에 재료가 귀하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듯하다.
이들은 버리기보다 고치고 리폼하는 것을 즐기며, 낡은 것에 새 의미를 더한다.
손때 묻은 세월을 귀히 간직하고, 유행을 좇기보다 시간이 남긴 흔적을 품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집조차 허물지 않고 옮기는 그 수고로움 뒤에는 낯선 곳에서도 그 집의 역사를 이어가려는 마음이 있다. 또한 그렇게 ‘시간을 품은 집’을 사려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마음은 비단 집뿐 아니라, 그 땅에 발을 내디딘 이방인을 향한 시선으로도 이어진다.
새로 온 이웃이 건네는 매끄러운 영어 이름보다, 그가 나고 자란 땅의 숨결이 담긴 원래의 이름을 묻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생소한 발음을 몇 번이고 정성스레 따라 부르며, 그 이름에 담긴 고유한 시간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을 촬영하고도 영화 세트를 그대로 두지 않고 풀 한 포기, 돌 하나까지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위적인 창조물보다 자연 본연의 시간을 더 앞세우는 그들의 오랜 태도다. 그 덕에 여행객들은 꾸며진 장면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풍경 그 자체를 조우한다.
어제의 자취를 품기로 한 선택이 당장의 이로움이나 편리함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마음은 자연을 닮아가듯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허물지 않고 옮기는 그들의 방식 속에는,
‘허물지 않는 마음’이 살아 있다 —
지나온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땅 위로 오늘을 이어가는 조용한 지혜가.